자전거 탄 풍경
06/12/23  

나는 내가 잘 못하는 것은 하기 싫어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하기 싫은 것은 쉽게 포기해버리곤 했다. 누군가 나 같은 사람은 의외로 뭐든지 잘하고 싶어 하는 완벽주의자인 경우가 많다고 했다. 하지만 그래 봤자 제대로 시도조차 해보지 않는 겁쟁이에 지나지 않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래서 나는 못하는 것 투성이다. 그렇게 자전거도 포기했고 무려 40여 년 동안 나는 자전거를 못 타는 사람으로 살아왔다. 

지난 5월, 나에게는 참 많은 일이 있었지만 5월을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자전거"라고 해야만 할 것 같다. 5월 한 달간 거의 매일 자전거를 탔다. 초긴장 상태에서 벌벌 떨면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핸들을 부서져라 꽉 쥐고 페달을 밟았다. 과연 나는 자전거를 탈 수 있을까? 불안했고 자신이 없었지만 시작할 때 수준은 각기 달라도 마칠 때는 다 똑같아진다는 자전거 강사님의 말씀을 믿고 가보기로 했다. 

4주간의 자전거 교육을 마치고 졸업여행은 여주로 다녀왔다. 강천섬에서 출발하여 한강의 3보(강천보, 여주보, 이포보)와 남한강 자전거 길을 타고 이포보까지 다녀오는 35km 코스였다. 풍경이 너무 아름답고 업힐이 많지 않아 초보 라이더에게 좋은 코스라고 한다. 난생처음 장거리 라이딩이라 정신이 없어 모든 풍경을 눈에 담고 즐기기엔 역부족이었지만 그래도 자전거에서 맞이하는 모든 것들이 좋았다(벌레 빼고). 그리고 졸업 여행 이후 30km 안팎 거리의 양재숲, 한강 순환 코스 연수도 무사히 다녀왔으니 이제 자신 있게 자전거를 탈 수 있다고 말해도 괜찮겠지. 

아기 엄마가 되고 나면 유독 아기 엄마들이 눈에 들어오고, 러닝을 시작했을 때는 온통 달리는 사람들만 보이더니 이제는 어딜 가나 자전거만 보인다. 예전에 내가 운전자나 보행자였을 때는 자전거가 여간 걸리적거리는 것이 아니었는데 나도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되고 보니 자전거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다 있었다. 자전거 전용 도로가 확보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차도에서는 차에게 밀리고 보도에서는 보행자에게 밀려 자전거의 입지가 매우 작다. 곳곳에서 차들이 튀어나오고 사람들도 튀어나오고 킥보드와 오토바이는 매우 위협적이기까지 하다. 자전거를 타고 나서야 보게 된 씁쓸한 풍경이다.

도로교통법상 자전거는 차로 지정되어 차와 동일하게 취급되기 때문에 차도를 이용해야 하는 것이 맞다. 그래서 자전거 전용 도로가 있지 않는 한 보도 위에서는 자전거를 탈 수 없고 끌고 걸어야만 한다. 하지만 복잡한 서울 시내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고 달린다고 생각하면, 어우~! 너무 아찔하다. 그나마 우리집 근처에는 자전거 전용도로가 꽤 있는 편인데 그마저도 잘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나도 자전거를 타지 않을 때는 무심코 지나쳤던 부분인데 차나 보행자는 자전거 전용 도로에 진입하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을 써야만 한다. 나 같은 초보 라이더도 마음 놓고 자전거 좀 탈 수 있도록 자전거 전용 도로를 제발 지켜줍시다! 

자전거 전용 도로가 더 확산되고 제대로만 지켜진다면 서울은 자전거 타기 꽤 괜찮은 도시가 되지 않을까? 이미 서울은 공유자전거 "따릉이" 시스템이 잘 구축되어 있으니 말이다. 따릉이는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완전 무인 공공자전거 대여 서비스로 아주 저렴한 금액으로 자전거를 대여하고 리턴할 수 있어서 매우 편리하다. 가까운 거리를 이동할 때는 확실히 차보다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데다가 따릉이 대여(반납) 장소가 곳곳에 있어서 아주 많은 사람들이 만족하며 이용하는 것으로 안다. 이용권은 한 시간 대여 시 1천 원, 1시간씩 7일은 3천 원, 1시간씩 365일도 3만 원밖에 되지 않는다. 나도 이미 정기권을 구매해서 몇 차례 이용해 보았다. 

자전거 4주 교육에 졸업 여행과 연수 그리고 자전거 동호회 가입과 공유 자전거 따릉이 이용까지…... 정말 지난 5월은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것이 자전거인 것처럼 살았다. 일곱 살 꼬마도 5분이면 탄다는 자전거를 타기까지 너무 오랜 세월이 걸렸으니깐. 남들에게는 너무 당연하고 별일 아닌 자전거가 나에게는 무슨 엄청난 이력이나 업적이라도 되는 양 가슴 뿌듯한 성취감마저 안겨주었다. 이제와 자전거를 타게 되었다고 내 인생이 바뀔까? 그럴 리는 만무하지만 어딘가 조금은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었으니 내 삶도 조금은 더 잘 굴러가 주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오래오래 자전거 탄 풍경을 만끽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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