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읽기
06/26/23  

"엄마, 내 마음을 알려주는 기계가 있었으면 좋겠어." 며칠 전 초등학교 3학년인 막내가 이렇게 말했다.

"그래? 왜?"

"엄마가 내 마음을 잘 모르잖아."

"그렇지. 네가 말을 안 해주면 엄마는 모르니깐. 네가 그냥 말을 해주면 안 돼?"

"그렇지만 화나거나 슬플 때는 말하고 싶지가 않아."

"그렇구나. 그럴 수 있지."

"그래서 기계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아. 내가 말을 안 해도 엄마가 내 마음을 알 수 있게."


말하기는 싫은데 내 마음은 알아줬으면 좋겠는 그 기분이 뭔지 알 것 같다. 하나하나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상대가 내 마음을 다 알고 그에 맞춰주면 얼마나 편하겠는가. 불필요한 오해도 사라지고 마음을 헤아리려고 애쓸 필요도 없을 테니깐. 어릴 적에 보던 영화나 드라마에 마음을 읽는 초능력을 가진 사람이 등장했었고 여러 초능력 중에 마음을 읽는 능력이 제일 별로라고 생각했었다. 그보다는 순간이동, 투명인간, 하늘을 나는 능력들이 훨씬 더 근사해 보였다. 그런데 이제와 생각하니 마음을 읽는 능력이야말로 가장 탐나는 능력이 아닌가? 살면서 순간이동이나 투명인간 능력을 쓸 일이 뭐 그리 많겠는가. 그보다는 마음을 읽는 능력이 가장 유용하게 쓰이겠지.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얼마나 피곤하고 괴로울까 싶기도 하다. 배우 이종석, 이보영 주연의 "너의 목소리가 들려"라는 드라마에서 이종석은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을 가진 주인공이다. 하지만 그 능력 때문에 가까운 이들에게 상처받는 일들이 계속 생기고 오히려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된다. 그러게. 생각해 보니 무섭네. 알고 싶지 않은 마음들까지 알게 되는 건 역시나 너무 끔찍할 것 같다. 게다가 비밀로 하고 싶은 마음도 있는 법이 아닌가? 구태여 내 마음을 속속들이 까뒤집어 보여주고 싶지 않을 때가 더 많을지도 모른다. 사람의 마음을 적나라하게 다 알게 되어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을 수도 있고. 

마음을 읽는 초능력이나 독심술이 없는 우리는 평생 타인이 마음을 들여다보려고 노력하며 살아간다. 얼굴 표정, 음성, 제스처 등을 단서로 그 사람이 내게 보내는 메시지를 최대한 잘 이해하고자 노력한다. 가끔은 이러한 단서들로 상대의 메시지를 해석하고 마음을 이해하는 데 성공하기도 하지만 또 어떨 때는 전혀 의중을 알 수 없어 당황스럽기도 하고 엉뚱한 실수를 범하기도 한다. 나도 40년 넘게 해 왔지만 신통치 않은 걸 보면 마음 읽기란 나이 먹는다고 자연스레 습득하는 능력도 아닌 모양이다. 

우리 집 막내는 가끔 심사가 뒤틀리면 안 해도 되는 이상 행동을 하곤 한다. 방금 전까지 착하고 온순했던 아이가 갑자기 돌변해서 말 꼬투리를 잡고 늘어지고 말도 안 되는 질문을 끊임없이 해댄다. 그것도 주로 내가 뭔가에 열중하고 있을 때나 바쁠 때 그런다. 내가 볼 때는 그 원인이 참 어이없이 하찮은 것이지만 아이에게는 그것마저도 속상할 수 있겠지 싶어서 한두 번은 나긋나긋 대꾸를 해주다가 결국 얼마 못 가 화를 내거나 야단을 치게 된다. 감정을 말해주지 않고 엉뚱하게 나쁜 행동을 하니 부모는 마음을 헤아리기 이전에 그 행동에 대해서만 지적을 하게 되고 그럼 아이는 더 속이 상하고 마는 악순환. "내 마음 좀 알아줘." 계속 신호를 (신호가 다소 심술궂을 때도 있지만) 보내는 초등학교 3학년짜리 내 아이 마음 하나도 헤아려주지 못하면 과연 누구의 마음을 읽을 수 있겠나 싶은 요즘이다. 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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