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는 MBTI로 성격 검사를 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MBTI를 묻는 것이 흔한 일이 되어버렸지만 원래 성격 테스트의 원조는 혈액형이 먼저다. 혈액형 성격설은 혈액형에 따라 사람의 성격이 영향을 받는다는 사이비과학으로 대표적으로 'A형은 꼼꼼하고 배려심이 있지만 소심하고 뒤끝이 있다', 'O형은 성격이 원만하고 열정적이지만 다혈질이다', 'B형은 사교적이고 재주가 많지만 자기중심적이다', 'AB형은 천재 아니면 바보다'와 같은 속설이 우리 사회에 만연하게 뿌리내려 있었다. 이런 속설은 20세기 초 유럽에서 시작되어 한국과 일본 등에 전파되었다고 하는데 과학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혈액형으로 성격을 판단하는 것에 대한 정확도와 신뢰도에 대한 논란은 끊임없이 지속되어 왔다.
혈액형에 따라 성격에 차이가 있다는 주장이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2021년 한국리서치 조사에 의하면 혈액형에 따라 사람들의 성격에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응답은 56%로,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는 응답(32%) 보다 높았다(모르겠다 12%). 과거에 비해 (2004년 조사에서는 75.9% 혈액형과 성격의 상관관계가 밀접하다고 여겼음) 혈액형 성격론을 믿는 사람이 많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과반이 넘는 사람들이 혈액형 성격설을 믿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혈액형 성격설을 믿는다는 응답과는 별개로, 인간관계에서 혈액형을 고려한다는 응답은 소수였다. 친구를 사귈 때 혈액형을 고려한다는 응답은 8%, 애인을 사귈 때 혈액형을 고려한다는 응답은 10%에 그쳤다. 혈액형이 성격에 미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 믿지만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형성할 때 크게 작용하지는 않는 모양이다. 다만, 10명 중 4명(42%)이 자신과 잘 맞는 특정 혈액형이 있는 것 같다고 답했는데 40대 응답자 중에서는 50%가, 50대 중에서는 47%가 자신과 잘 맞는 특정 혈액형이 있다고 답한 반면, 20대는 26%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확실히 요즘 젊은 세대들은 혈액형에는 별 관심이 없구나 싶다.
선호하는 혈액형이 있다고 답한 사람들이 선호하는 혈액형은 O형이라는 답이 52%로 가장 많았고, 이어서 A형(26%), B형(14%), AB형(8%) 순이었다. 아마도 O형은 대인관계가 원만하고, 뒤끝이 없으며 활발하고 적극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러한 인식이 반영된 결과인 것 같다. 심지어 O형 응답자도 자신과 동일한 O형을 선호한다는 응답이 51%로 가장 높았다. 나는 O형이라서 그런가 모든 혈액형들이 O형을 선호한다고 응답한 것에는 살짝 뿌듯한 마음이 든다.
그런데 이렇게 혈액형과 성격을 연관 지어 집착하는 나라는 일본과 한국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미국인들은 혈액형 자체에 전혀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타인의 혈액형을 물어보는 행위 자체가 아주 터무니없는 일로 심지어 본인의 혈액형을 모르는 사람들도 태반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도 부모에게 아이 혈액형을 알려주지 않는다. 출산 후 궁금해서 병원 측에 "나중에 위급한 상황을 위해 혈액형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지 않냐?"라고 물었더니 어차피 병원에 가면 바로 혈액형을 검사하니 전혀 상관없다고 한다.
나는 혈액형 성격설을 신뢰하지는 않지만 어쩐 일인지 내가 A형과 잘 맞는 편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오긴 했다. 공교롭게도 내 주변에 A형이 유난히 많았기 때문인데 (한국인은 원래 A형이 제일 많음) 남편, 미국에서 제일 친한 친구들, 또 한국에 제일 친한 친구들 대부분이 A형이다. 그렇다고 다른 혈액형을 기피하거나 특별히 안 맞는 혈액형이 있어서 곤란을 겪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A형과 O형이 뭔가 조화를 잘 이룬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혈액형 성격설을 신봉했던 시대 사람이라 어쩔 수 없이 뇌리에 주입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의 성격을 혈액형이나 별자리, MBTI 등에 의존해서 분류하고 단정 지어 버리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로 절대로 맹신해서는 안 될 것이다. 나도 AB형 측근을 종종 놀리곤 했는데 앞으로 주의해야겠다. 그녀가 특이한 것은 유전적 특성과 환경적 요인으로 인한 것이지 그녀가 AB형이라서 그런 것은 절대 아니지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