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어 학원 체험기
07/17/23  

중1 딸이 지난 5월부터 대형 영어 학원에 보내달라고 졸라댔다. 이 근방에서 워낙 악명 높은 학원이었다. 학원에 들어가기 위해 레벨 테스트를 치러야 하는데 그 시험 자체가 너무 어려워 학원 입시를 위한 학원과 프로그램이 따로 있을 정도라고 했다. 워낙 숙제 많고 시험도 어렵기로 악명 높은 학원이라 딸에게 다시 생각해 보라고 여러 번 말했지만 딸은 웬일인지 고집을 부렸다. 공부에 열정을 보이는 게 드문 일이라 딸의 의사를 존중해 바로 학원 레벨 테스트를 보고 간당간당하게 합격하여 7월부터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첫 수업 마치고 돌아와서 "엄마, 선생님이 한국말하는 줄 알았는데 한참 듣다 보니 영어였지 뭐야. 선생님 영어 발음이 너무 안 좋아. 못 알아듣겠어."라며 딸은 한국의 입시 위주 영어 학원에 꽤나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학원 숙제 양은 과연 소문대로 어마어마했다. 게다가 딸은 그간 영어 학원을 다녀본 적이 없어서 이런 식으로 단어를 외우고 문법 위주로 영어를 배우는 것이 생소해서 적응하는 게 굉장히 힘이 드는 모양이다.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오후 4시 25분에 학원 셔틀에 올라 5시부터 7시 30분까지 수업을 하는데 매번 시험 결과가 합격점을 받지 못하면 남아서 재시험을 치러야 한다. 시험 준비는 커녕 숙제도 완벽히 끝내지 못한 우리 딸은 매번 공포의 재시험을 보고 밤 10시 마지막 학원 셔틀을 타고 11시가 다 되어 집에 돌아왔다. 

축 처진 어깨로 오밤중에 저녁을 먹고 있는 딸을 보면 딱하기도 하고 너무 속상해서 화가 났다. 딸에게 쏟아부을 수는 없기에 안방으로 돌아와 남편에게 속상함을 토로했다. "내가 이럴 줄 알고 이 학원은 어렵고 힘들다고 그렇게 말을 했는데 기어이 가겠다고 하더니만 매번 이게 무슨 고생이야. 이제 겨우 중1인데 밤 11시에 저녁을 먹으면 어떡해. 아니 숙제도 안 하고 주말 내내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친구 만나서 놀다 오고…... 어우 진짜." 내가 이렇게 떠들고 있을 때 남편은 약간 무심하게 마치 제삼자처럼 툭툭 말을 섞다가 갑자기 "그래서 네가 원하는 게 뭔데? 어떻게 하고 싶은데?"라고 했다. 그걸 알면 내가 이렇게 답답하고 화가 나겠는가? 그걸 모르니 나도 속이 터지는데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남편의 발언에 대화는 중단되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 남편으로부터 장문의 문자가 날아왔다. 혼자 보기 아까울 만큼 아버지의 진심이 느껴지는 내용이라 망설임 끝에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또래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모두 조금은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그래도 어제 우리 딸이 학원에서 무려 5시간 이상을 보낸 거잖아. 학교도 간 거고. 그 전에는 수영도 오래 배웠고 태권도도 오래 다녔던 걸 보면 포기가 빠르거나 끈기가 없는 편도 아닌 거 같아. 다만 시간을 좀 더 효율적으로 보내면 더 좋을 거 같은데. 하느님도 못 바꾸는 게 사람이니 부모 마음처럼 쉽게 내용이 전달될 거 같지도 않고. 몇 번 대화를 시도해 봤으나 잔소리로 받아들이는 것 같고. 그렇다고 잔소리를 안 할 수도 없고......
그래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진심을 전하는 거니깐. 내가 생각하는 건 최대한 내 걱정되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는 거지. 시험 점수에 대한 걱정이 아니고 몸이 상할까, 마음이 상할까, 나중에 힘들어질까…... 그런 걱정들 말이야. 그래도 모든 건 본인이 헤쳐나가는 게 인생이니깐. 아쉽게도 난 만능이 아니고, 돈도 권력도 거리가 있어서 정말 진심을 담은 응원을 해줘야지.  
그리고 솔선수범. 내가 열심히 살면 아이도 배울 거라 믿어. 엄마 아빠가 이리 열심히 사는데 알게 모르게 배우고 있을 거야. 인생의 성공이 사랑이길, 행복이길, 그걸 알고 살아가길 기도하고 말해주고 응원해 줘야지. 이제 곧 우리 가족의 미지의 영역을 오픈할 우리 딸의 앞길에 함께해 줘야지. 그럼 분명 아버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자식들이 우리보다는 더 나은 사람이 될 거야.
그래도 아빠 보고 웃어주고 성당도 같이 가고 음식물 쓰레기도 버려주고 동생들도 챙겨주고 밥도 잘 먹고. 이 정도면 효녀지. 고민거리가 흡연, 문란한 생활, 가출, 이상한 친구관계, 왕따 그런 게 아닌 게 얼마나 다행인지. 조금만 하면 더 잘될 걸 알기에 조바심은 나지만 자기 페이스로 잘 나아갈 거라 믿어.
너도 엄마로서 누구보다 훌륭하게 마음을 담아 아이들한테 해주고 있으니 분명 그 마음이 전달될 거야. 우리의 40대는 나중에 어떻게 회고될지 모르지만 아마 지금이 전성기가 아닐까 싶은데 우리 힘내서 좀 더 즐겨보자. 난 너의 일상을 오늘도 진심으로 응원해. 사랑해."

딸에게도 이런 우리의 마음을 전했더니 앞으로 숙제는 꼭 다 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예전에는 수학 학원 가는 월, 수, 금요일이 너무 싫었는데 이제는 제일 좋아졌다고 한다. 영어 학원 가는 화, 목요일이 너무 싫어서. 하지만 당장 그만두지는 않겠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숙제하는 딸 옆에 앉아 졸린 눈을 비비며 책을 읽고 필사를 하고 딸의 영어 단어장을 써줬다. 하...... 이민 가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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