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이사
08/07/23  

6년 전 미국에서 한국으로 이사 오던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정신이 아찔해진다. 남편은 6개월 먼저 한국으로 가버리고 친정 엄마까지 한 달 먼저 한국으로 들어가신 후 나는 혼자 국제 이삿짐을 싸야만 했다. 아, 혼자가 아니었다. 내 곁에는 10살, 7살, 6살, 3살 아이들도 있었지. 

주위에서 하나같이 "혼자서? 애 넷 데리고 혼자서 집도 팔고 이삿짐도 싼다고?"라고 할 때도 왜들 그렇게 놀라는 건지 그 심각성을 눈치채지 못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어떻게든 다 되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이 '아뿔싸! 이거 보통 일이 아니구나?'하고 바뀐 것은 이사를 이 주 남짓 남겨놓았을 때였나 보다. 매일같이 짐을 싸도 역부족이었다. 박스를 싸느라고 팔과 다리는 온통 시퍼런 멍투성이가 되었지만 집안을 둘러보면 남은 물건들이 잔뜩이었다. 남편이 먼저 한국으로 들어간다고 할 때 호기롭게 그러라고 한 나 자신을 책망해 보아도 너무 늦은 일이었다. 그렇게 '대체 나는 무슨 생각이었던 걸까?' 하며 내 발등을 찍고 또 찍었다. 많은 친구들과 가족들이 물심양면 도왔지만 내 인생 역경 탑 10에 들어갈 일이었다.  

이사가 이토록 끔찍한 일일 줄이야. 그러고 보니 나 스스로 이렇게 큰 규모의 이사를 해 본 적이 없었다. 한국에 살 때 경험한 두어 번의 이사는 부모님들을 따라 몸만 옮겨온 정도였고 미국으로 이민 와서 십 대 때 두어 번 이사를 했을 때도 내 작은 방만 내 소관이었다. 결혼을 하면서 라미라다 친정집에서 어바인 아파트로 이사 올 때도 신혼부부의 짐은 단출해서 친구 몇 명이 와서 이사를 끝내주었다. 

하지만 첫 아이를 낳고 주택으로 이사 오고 식구가 일곱 명까지 늘어나면서 10년 동안 그 집에 쌓인 짐은 어마어마했다. 처음 이사 왔을 때 텅 비어 발레 스튜디오 같던 집이 10년 동안 이렇게 꽉 채워지다니...  암튼 해외 이사를 앞두고 침대와 피아노를 제외하고 큰 가전과 가구들은 처분하기로 했다. 빨리 처리하려고 물건들을 SNS에 헐값에 올렸더니 반응이 꽤 뜨거웠다.

새집으로 이사 와서 큰마음 먹고 할부로 구매한 타원형의 식탁은 그해 여름 성경학교에서 아이들을 담당했던 선생님이 구매했다. 이제는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는 환하게 웃는 얼굴이 예쁘고 우리 셋째를 유난히 귀여워해줬던 그녀가 산다길래 애초 불렀던 금액보다 더 깎아서 보내주었다. 10년간 그 식탁에서 얼마나 많은 식사를 했던가... 수많은 사람들이 식탁에 앉았고 많은 대화와 웃음과 추억이 함께했던 특별한 식탁이었다. 

판다고 내놓은 서랍장들은 대인기여서 서로 가져가겠다며 싸움을 할 정도였다. 우리가 보유한 서랍장 중 일부는 공장에서 찍어낸 기성품이 아니고 친구가 직접 제작한 것으로 서랍 내부가 깊고 넓어서 엄청난 양을 수납할 수 있었다. 부피가 꽤 나가는 가구라 한국에서는 필요 없겠지 하고 처분했는데 결국 한국에 와서 서랍장을 여러 개 다시 구매해야만 했고 그때마다 그 서랍장이 떠올랐다. 사람들이 환장하고 사간 이유가 다 있었군. 

세탁기와 건조기는 어느 젊은 백인 부부가 구매했는데 친구한테 트럭까지 빌려와서 세탁기를 실어가던 남자는 어찌나 신이 나 있던지 '내가 너무 싸게 팔았나?' 싶으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10년이나 사용해서 사용감이 있긴 했지만 성능 하나는 끝내줘서 10년간 잔고장 한 번 없었다. 그 후 지금까지도 가전은 무조건 LG라고 믿게 되었다는...

가죽소파와 냉장고, 차 2대는 우리 집에서 아이들을 돌봐주던 내니가 구매했다. 꽤 목돈을 지출했지만 마치 새 물건을 장만한 사람처럼 뿌듯해 하며 행복하게 웃던 그녀의 얼굴이 잊히지 않는다. 정든 물건들이었지만 우리와 오랜 시간 함께했던 사람이 사용해 준다니 아쉬운 내 마음도 한결 편안해졌다. 

그렇게 한국에 온 지 딱 6년이 되었다. 한글 받아쓰기 빵점 받던 초1학년 딸은 중1이 되어 이제 영어 학원에서 영단어를 외우고 있고 혀 꼬부라진 발음으로 "이씨입유욱, 쌈씨입치일"하던 유치원생 아들은 초6학년이 되어 요즘 초등학생들이 즐겨 쓰는 신조어들을 남발한다. 기저귀 차고 한국에 입성했던 막내는 한국에서 어린이집부터 다녔으니 완벽한 한국 아이이다. 이제 나도 한국에서의 생활이 너무나 익숙해져서 이따금씩 '다시 미국에 가게 된다면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그때 그 고생을 떠올리면 다시는 이사 따위 절대로 하고 싶지 않다. 정든 곳을 떠나지 않고 오래오래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사람 일은 한 치 앞도 알 수가 없으니 앞으로 6년 뒤 우리가 어디에 살고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저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다음 이사가 너무 고되지 않게 버릴 것은 바로바로 버리고 짐을 너무 늘리지 말고 살아야겠구나 하고 생각만 하고 있을 뿐이다.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