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운동길 풍경
08/21/23  

"덥다. 더워." 너무 덥다며 한동안 걷기와 러닝을 쉬는 동안 몸과 마음에 덕지덕지 살이 찌고 말았다. 무자비한 무더위에 축축 늘어지는 몸은 소리 없이 무기력해졌고 내 몸의 에너지가 모두 소진되고 활기와 열정마저 사그라드는 기분이었다. 틈만 나면 축축 쳐지는 무거운 몸을 눕히고만 싶었고 계속 이러다가는 큰일 나겠구나 싶어서 이번주부터 다시 시작했다. 그래! 이제 일어나서 좀 걷고 뛰자.

오늘은 새벽 5시에 눈이 떠졌다. 준비를 하고 5시 35분에 집을 나섰는데 벌써 세상은 밝아오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 서로 시합이라도 하듯 하늘을 찌르던 매미 소리는 온데간데없고 언제부터 시작된 것인지 귀뚜라미들이 울어대고 있었다. 아파트 단지 내 고요함을 깨우는 귀뚜라미 소리는 왜 이리 아련할까…... 대체 몇 마리가 어디서 울고 있는 건지 알 수 없게 그윽하게 울려 퍼진다. 귀뚜라미 합창과 잘 어울리는 새벽 공기를 들이키며 내 몸 구석구석을 깨워본다.

바람이 좋다. 공기 중에 여전히 습도가 느껴지지만 바람이라도 불어오는 것이 감지덕지하다. 아직은 한낮의 기온이 섭씨 30도가 넘으니 해가 더 뜨거워지기 전에 나오길 참 잘했다 싶다. 이만하면 일찍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웬걸? 웬 사람이 이렇게 많지? 편의점 앞에는 심지어 테이블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는 어르신 두 분이 있다. 새벽 5시 40분 테이블 위에 늘어진 소주병들을 보니 훌륭할 것까진 없어도 대단하긴 하다. 밤을 새운 건가? 대체 이 술자리는 몇 시부터 시작된 걸까?

부지런한 사람들이 참 많다. 집 앞 산책로에는 벌써 어르신들이 줄을 지어 열심히 걷고 계신다. 모르긴 몰라도 매일매일 이렇게 걷는 루틴으로 하루를 시작하시는 분들일 게다. 조금 더 걸어서 큰 공원으로 향했다. 아들 이름으로 헌수한 나무에 들려 인사도 하고 살살 달리기 시작했다. 꽤 시원하다고 생각했는데 달리기 시작하자 금세 땀이 줄줄 흐르고 숨이 가빠온다. 러닝만큼 내 심장을 요동치게 하는 것이 최근 또 있었던가? 뛸 때마다 늘 나의 힘과 의지에 도전하는 기분이지만 그만큼 나 자신에게 새로운 가능성이란 게 남아있구나 싶어서 기분이 좋다. 훌륭한 러너들처럼 멋지게 달려 나가지는 못하지만 어찌 되었든 내 두 발이 땅을 밟고 내 몸은 공기를 가르며 앞을 향해 간다. 그러는 동안 내 마음은 한없이 자유롭게 퍼져나간다.

오랜만에 시작한 러닝이니 너무 무리하지 않기로 하고 집까지 남은 거리는 걷는 것으로 아침 운동을 마무리했다. 가는 길에 아이들 아침거리도 좀 사고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살 생각을 하니 발걸음이 더 빨라졌다. 하지만 오전 7시, 사거리부터 집까지 오는 길에 문을 연 집이라고는 떡집과 김밥집, 24시간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뿐이었다. 우리 아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떡과 김밥이라니...... 아…... 그 어느 때보다 시원한 아메리카노가 절실한데......

그런데 우리 동네 대부분의 카페들은 오전 10시가 넘어야 오픈이고 가장 일찍 오픈하는 카페도 8시는 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군고구마와 찐 옥수수를 판매하는 야채가게마저 닫혀있는 것을 보니 괜히 힘이 쭉 빠졌다. 장담컨대 우리 동네에 이른 아침부터 영업하는 커피집이 생기면 무조건 대박이다. 이른 시간에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곳곳에 나와있는데 맛있는 커피나 토스트 향기가 퍼진다면 누구든 흔들리다가 언제고 한 번은 사 먹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침 일찍 활동을 시작하는 나는 아마도 단골이 되고 말 것이다.

암튼 오랜만에 아침 러닝 후 간절했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못 마신 아쉬움을 이렇게 길게 써 내려가고 말았네. 내일도 아침 일찍 나설 예정인데 근방에 일찍 오픈하는 카페를 미리 검색해 둬야겠다. 커피를 잘 마시지 않는 내가 유일하게 커피를 맛있게 마시는 순간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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