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é será, será
09/05/23  

지난 수요일 아침이었다. 등교하는 아이들 아침을 챙기려고 부엌으로 나왔는데 고요한 집안에 "윙~"하는 기계음 같은 것이 들렸다. 공기 청정기, 제습기, 냉장고, 전기밥솥, 정수기, 세탁기 등 부엌 쪽에 있는 기기가 왜 그리 많은지 하나하나 귀를 갖다 댔으나 원인을 찾지 못했다.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나도록 소리의 근원을 찾지 못했는데 소리에 꽂히니 어찌나 그 소리만 들리는 것 같던지 머리까지 지끈지끈 아파오는 것 같았다. 중학생 딸은 정수기가 분명하다고 했고 남편은 냉장고를 의심하면서 전원 코드를 뽑아봐야겠다고 했다. 그런데 부엌 벽면에서 유난히 더 크게 들리던 소리에 정체는 바로 아파트 스피커였다. 관리 사무소 안내 방송이 나오는 그 스피커에서 이상한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아침 8시 조금 넘어 아파트 관리 사무소에 전화를 했더니 9시 지나 사람을 보낼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통화를 마치고 이십 분쯤 지났을 때 스피커에서 몇 번 잉~ 삐~ 지직~ 하는 소리가 나더니 이내 윙~ 하는 소리도 멈췄다. 그리고 또 이십여 분이 지나고 초인종이 울렸다. 이미 문제가 해결되었지만 사람을 보낸 모양이었다.


"전화 주셨다고 해서…...."

"네. 그런데 제가 전화드리고 얼마 안 가서 소리가 멈췄어요."

"아. 그렇군요.""그런데 원인이 뭔가요?"

"아…... 그 기기에 약간의 노이즈가 있어서 그게 맞지 않으면 그럴 수도…..."

"그럼 저희 집만 그랬던 건가요?"

"아뇨. 다른 집도 다 그랬을 겁니다."

"아, 근데 저만 연락을…....?"


나는 말을 잇지 못했고 관리사무소 직원은 묘한 미소를 지으셨다. 충격적이었다. 그 소리가 들리지 않았을 리가 없다. 조용한 아침 시간 소리가 나지 않아야 할 곳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는데 500세대가 넘는 아파트에서 이걸 문제 삼은 사람이 나뿐이라니 믿어지지가 않았다. 

나는 꽤 오랫동안 내가 꽤나 털털한 성격의 소유자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사람을 만나면 걱정 근심 좀 내려두라며 훈수를 두기도 했고 그들의 예민함을 웃음 포인트로 놀리기까지 했었다. 아무거나 잘 먹고 누구와도 잘 어울리고 남이 하는 소리에 전전긍긍하는 편도 아니니 이만하면 무난하고 털털한 거라 여겼던 것 같다. 누긋하고 털털한 성격은 내가 갖고 있는 몇 안 되는 나의 장점이라 믿기까지 했었다. 

하지만 가끔씩 어떤 사람들이 나를 은근히 까탈스러운 사람 취급하고 더 심한 경우에는 내 눈치를 보거나 조심하기까지 하는 걸 보며 내가 아주 쉽고 편한 사람은 아닐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특히 MBTI가 대유행을 하면서 J (판단형)와 P (인식형)의 명확한 차이를 깨달으며 나 자신에 대해서 더 생각해 보게 된 것 같다. 나는 J에 더 가까운 인간으로 계획에 없던 일이 갑자기 생겨나면 그게 설사 좋은 일이고 재미있는 일이어도 나에게는 돌발상황으로 접수된다. 사소한 일이라도 플랜 B까지 생각해 두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편이고 즉흥적으로 벌이는 일들은 다 내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만, 변수가 생겼을 때 의연해 보였던 것도 내가 미리 예상했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내가 20년 넘게 좋아했던 문구가 있는데 바로 "Qué será, será"이다. 스페인어인 줄 알았는데 콩글리시처럼 영어식 스페인어 단어라고 한다. 왜곡된 의미로 포기나 체념하는 심정으로 ‘될 대로 되어라' 부정적인 의미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보다는 'Whatever will be, will be'와 같이 '뭐가 되든지 될 것이다'와 같은 긍정의 의미로 응원구호나 응원가로도 많이 쓰이고 있다. 

실제 내 삶이나 성향과는 거리감이 있을지 모르지만 나에게 케세라세라는 삶의 불확실성에 희망을 잃지 말고, 우리에게 다가오는 통제할 수 없는 어려움과 도전들을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맞서라는 응원이자 주문이다. 아무리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고 플랜 B 아니라 플랜 Z까지 만들어도 안 되는 것들은 안 된다. 반면 다 내려놓고 마음에 안 드는 결과지만 받아들여야지 하고 있을 때 전화위복으로 더 좋은 일이 생기는 경우도 있었다. 

묵직하게 나를 지배하는 불안과 걱정 근심들을 조금 내려놓기 위해서 나는 오늘도 케세라세라를 외쳐본다. 내가 바꿀 수 없는 것들 때문에 불안해하고 스트레스 받기보다는 "어떻게든 되겠지. 괜찮을 거야. 결국 잘 될 테니 걱정하지 마." 하면서 어떤 상황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든 의연하고 평온한 사람이 되고 싶다. 


Qué será, será

Whatever will be, will be

The future's not ours to see

Qué será, será

What will be, will 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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