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이름
09/18/23  

“어머니, 서준이 담임입니다.”"네."“서준이가 점심시간에 혼자 책상에 앉아 있어서 왜 그러냐고 물으니…...”“선생님…… 전화를 잘못 거신 것 같아요. ”"앗, 어머니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 다음에 다시 연락드릴게요."3년 전 하늘로 떠난 아들의 중1 때 담임 선생님이 며칠 전 전화를 걸어왔다. 실수였다. 아마도 가르치시는 반에 같은 이름의 아이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럴 만도 하지…... 그해에 가장 인기가 많은 이름이었으니깐......

아들의 이름은 이서준(상서 서瑞, 깊을 준濬)이다. "준"자 돌림을 사용해야 한다고 해서 임신 중에 이름을 서준이로 지을까 준서로 지을까 한참을 고민했고 베이비샤워 때까지도 결정을 못 하다가 결국 서준이로 결정했는데 그 시대에 가장 인기 있는 이름이 될 줄은 몰랐다. 평생 너무 흔한 이름 "유진"으로 살아온 나는 내 아이들만큼은 조금은 특별한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는데 남편은 너무 특이한 이름에는 강한 거부감을 내비쳤다. 그래서 무난한 이름으로 리스트를 만들었고 그 중 선택한 이름이 하필 그 이후부터 가장 인기 많은 이름이 되고 만다. "서준"이란 이름은 그 이후 10년간 인기 있는 남자아이 이름 랭킹 5에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태어나서부터 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쭌쭌이라는 나만의 애칭으로 불렸는데 혹시나 아이가 부끄러워할까 점차 부르지 않았더니 언제부턴가 나만 기억하는 애칭이 되어버렸다. 아이 코에 내 코를 바짝 밀착시키고 "쭌쭌아"하고 부르면 늘 아이 이마에서 솜사탕처럼  달콤하고 팝콘처럼 고소한 향이 나곤 했었다. 엄마 눈에는 그림 같은 눈썹, 길고 짙은 속눈썹, 또렷한 눈동자, 발란스가 좋은 코, 도톰하고 귀여운 입술 등 하나하나 아무리 뜯어보아도 어디 하나 빠지는 곳이 없는 예쁜 아가였다. 

미국에서 태어나 4학년 때까지 미국에서 자랐기 때문에 서준이란 이름은 거의 사용하지 않았고 미국이름인 Brendan으로 불렸다. 한국 이름을 부를 때도 나는 서준이란 이름 대신 "준"이라고 불렀다. 외자 이름은 뭔가 더 근사했고 또 더 빠르게 부를 수 있었다. 그래서 아이가 어릴 때는 스스로도 본인의 한국 이름이 ‘준’인 줄 알고 있었다. 미국에서 학교를 다닐 때 1학년 같은 반에 주재원 아버지를 따라 전학 온 한국 아이가 있었는데 학교에서 처음 만난 한국 친구가 너무 반가웠던 모양이다. 본인이 먼저 가서 서툰 한국어로 “안녕? 나 쭌이야. 나도 한국 사람이야”라고 인사했다고 한다. 나중에 그 아이 엄마를 통해서 들었는데 그 모습이 정말 귀엽고 사랑스러웠다고 한다. 

2017년 온 가족이 한국으로 오면서 아들은 비로소 이서준이란 이름으로 살게 되었다. 전학 온 4학년 같은 반에 이미 이서준이라는 아이가 있어서 아들은 미국 서준 줄여서 "미서"라고 불렸다. 웬일인지 아이는 미서라고 불리는 것을 굉장히 좋아해서 소지품에도 이름대신 미서라고 표기할 정도였다. 본인이 미국에서 온 교포라는 사실을 아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 속으로 다행이다 싶었다. 

곳곳에 서준이들이 있다. 우리 아들도 서준인데, 우리 조카, 누구네 동생, 누구의 친구, 하다못해 TV에서도 자주 들리는 그 이름. 바로 내 아들의 이름이다. 사람이 사람의 이름 석자를 기억하고 부르는 것은 별로 대수로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름을 부르고 대답 소리를 듣는 것, 살아있다면 누구나 매일같이 하고 사는 그 당연한 것을 나는 할 수가 없다. 아무리 불러도 아들은 대답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비록 조금 흔한 이름이긴 하지만 그 누구보다 그 이름을 빛내며 살아갈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어디서든 아들의 이름이 들려오면 항상 가슴이 뿌듯하고 대견했다. 평생토록 그 자랑스러운 이름을 부르며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한순간에 아들의 이름은 아무리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이 되고 말았다. 아들을 잃은 아프고 슬픈 내 마음은 짙은 바닷속에 잠겨 헤어 나올 수가 없지만 이제 아들의 이름은 내 안에 아들이 살아있음을 상기시켜 주는 소중한 상징으로 남았다. 

이서준.
가끔은 듣기만 해도 뭉클하고 그 이름을 내뱉는 것조차 눈시울이 붉어지고 목이 메이지만 나는 이제 영원히 내 가슴에 새겨진 그 이름과 함께 살고 그 이름을 부르다 죽을 것이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김소월 님의 "초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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