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운 피부미인
09/25/23  

‘봄볕엔 며느리 내보내고 가을볕엔 딸 내 보낸다’던데 요 며칠 가을 햇살이 어찌나 따가운지 야외활동이 많은 나의 피부에 기미와 주름이 더욱 촘촘해지고 있다. 하루하루 부쩍 피부가 늙어 가는 것 같아 서글프다. 하지만 늙어 가는 것이 비단 피부뿐이랴? 피부는 그저 그중에 하나일 뿐이다.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어서 유명하다는 피부과를 찾은 적이 있었다. 피부과 전문의가 있는 병원이 아니고 의원이었는데 그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연예인 협찬도 많이 하고 외국인 피부 시술 패키지도 있는 기업화된 병원이랄까? 특수카메라로 촬영된 내 피부는 징그럽고 끔찍했다. 큰 모니터 화면으로 그 끔찍한 몰골을 보면서 대표 원장과 상담을 했는데 총체적 난국의 내 피부 문제들을 손보려면 최소한 돈 몇 백은 써야 하는 모양이었다. 상담을 마치고 나와서 대기하고 있는데 환자며 직원이며 이 병원에 왔다 갔다 하는 사람 중 피부가 안 좋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관리를 해서 피부가 좋은 건지, 원래도 피부가 좋은 사람들이 계속 관리를 받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꽤나 충격적이었다. 여윳돈이 생기면 다시 와야지 했던 병원은 5년이 넘도록 못 가고 있다. 

우리 때는 피부 관리라는 것이 딱히 없었다. 요즘에야 갓난아기부터 시골 할머니들도 피부 타입에 맞게 다양한 제품으로 보습을 하고 자외선 차단제도 챙겨 바르지만 내가 어릴 때는 거짓말 조금 보태서 씻고 다니기만 하면 다행이었다. 내가 자외선 차단제라는 것을 바르기 시작한 것도 십 대 후반 무렵인 것 같다. 그마저도 수영장이나 바닷가 정도나 가야 바르는 줄 알았지 평상시에도 자외선 차단제를 발라야 한다는 것은 서른 가까이 되어 알았다. 이미 내 피부는 기미, 주근깨, 잔주름, 여드름과 흉터로 엉망이 된 후였다. 그러다가 결혼을 앞두고 나도 평생 처음 돈을 주고 피부 관리라는 것을 받아봤다. 그 시절 나에게는 꽤나 큰 금액을 투자했었지만 효과가 드라마틱하지는 않았다. 피부도 갖고 태어나는 것이 제일 중요하구나 싶었다. 

몇 달 전인가 친구가 부부동반 모임에 다녀와서 푸념을 늘어놓았다. 남편 친구의 아내가 어찌나 예쁘던지 평소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지만 함께 나란히 사진 찍고 싶은 마음마저 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녀의 반짝이는 물광 피부에 기가 죽어 돌아왔다는 친구를 위로해 보았다. "에이 분명 엄청 돈 많이 쓰고 있을 거야. 보톡스, 필러, 물광주사 같은 것도 주기적으로 맞고." 돈 안 쓰고 너 정도 피부면 훌륭하다며 위로했다.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도 깐 달걀, 도자기처럼 매끈하고 뽀얀 피부가 부럽다. 그들에게도 여드름이나 주름은 둘째치고 잡티나 모공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그런 피부를 유지하려면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충분한 수면과 수분 섭취만으로 피부 미인이 되었다는 분노를 부르는 연예인들의 발언은 절대 믿지 않는다. 그렇다면 역시 피부과 시술인 건가? 울쎄라? 리쥬란힐러? 엑셀브이? 프라셀? 이름들도 어렵고 헷갈리는 고가의 시술이면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는 건가? 아니겠지. 타고나는 것이 9할은 차지하겠지? 그렇다면 더욱 희망이 없는데...... 이런 생각이 맴돌지만 그렇다고 별다른 노력을 하고 있지도 않다. 가끔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자, 마스크, 스카프, 팔토시 등으로 피부를 완벽히 차단하고 외출하는 사람들을 보면 피부 보호를 위한 열정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온몸이 주근깨로 뒤덮이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냥 나가 돌아다니는데 말이다.

한때 나도 피부만 좋아지면 소원이 없을 것만 같았다(살만 빠지면 당장 비키니를 입겠다 같은 느낌으로다가). 하지만 피부 좀 좋아진다고 뭐가 그리 달라질 수 있을까? 성인 여드름으로 고민하던 20대 때는 여드름만 없어지면 인기녀라도 될 줄 알았지만 마흔을 넘기고야 여드름에서 해방이 되었는데 너무 늦은 것인지 아니면 본판 불변의 법칙인 것인지 그다지 달라진 게 없다. 그리고 따지고 보면 이 피부를 갖고 여태껏 살았지만 나만 좀 불만이었지 딱히 뭐 불이익을 당한 것도 아니고 연애를 못한 것도 아니고 취직을 못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대충 이만하면 그냥 살자 싶다가...... 또 거울 속에 나를 보면 심난해져서 어느새 기미 제거, 주름 제거, 리프팅 같은 것을 검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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