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만났다
02/05/24  

나에게 아들의 생일은 참으로 아픈 날이다. 아홉 달을 품고 있다가 갖은 고생을 해서 낳았는데 매년 생일을 챙기는 것도 엄마의 몫이더니 아들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나 혼자 아들의 생일을 기억한다. 왜 나만 이렇게 버겁고 아픈 거냐고 따져 물어도 소용없다. 그저 엄마의 숙명일 뿐이다. 엄마 배 속에서 자라 엄마 모유를 먹고 자란 내 새끼니깐... 같은 부모라도 아버지는 대신해 줄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고 해두자. 

주인공은 떠났지만 매년 어김없이 아들의 생일이 돌아오면 나는 성당에 아들 이름으로 미사 지향을 넣고 미역국을 끓이고 아들이 좋아하던 초콜릿 케이크를 준비한다. 아니 사실 뭐라도 하고 싶어서 그런다. 넋 놓고 하루를 보낼 수 없으니까... 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고작 이런 밖에 없으니까... 억지 미소를 지어가며 꾸역꾸역 기운을 내어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본다. 

올해도 아들이 곁에 있을 때는 패스하곤 했던 미역국을 내 손으로 끓였다. 주인공은 못 먹는 미역국을 정성껏 끓여 아침에 식구들 챙겨줬는데 다들 배 안 고프니 조금만 달라고 툴툴거려 기운이 쭉 빠졌다. 그리고 성당에 가서 혼자 미사를 드리는데 세상을 떠난 이들의 이름 중 아들의 이름이 호명되어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주님 봉헌 대축일에 축복처럼 태어난 나의 아들은 어찌하여 이렇게 빨리 세상을 떠난 것인지 나는 내 아들을 하늘에 봉헌한다고 한 적이 없는데 강제로 빼앗겨버린 기분이 들었다. 매년 생일 케이크 앞에서 촛불을 불던 아들은 분명 환하게 웃고 있었는데 그 아들은 어디 가고 나는 남은 평생 아들의 생일에 가슴을 치게 생겼으니 참으로 막막했다.  

그렇게 평생 못다 한 작별인사 때문에 가슴이나 치면서 살게 될 줄 알았던 나에게 말도 안 되는 행운이 찾아왔다. MBC 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 시즌4"를 통해 아들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4년 전 시즌1이 방영되었을 때, 아들을 떠나보내기 전이었는데도 너무 슬퍼서 끝까지 볼 수가 없었다. 나도 자식 잃은 부모가 되고 나서야 다시 찾아보게 되었는데 정말 가슴이 아파 꺼이꺼이 많이도 울었다. 

이 프로그램은 VR(가상현실)로 죽은 가족을 다시 만나게 해주는 것으로 꽤나 큰 이슈가 되었는데 일부 사람들은 억지스럽게 가상으로 이런 만남을 갖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들도 적지 않았다. 이미 힘든 애도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가족들에게 이런 단발성 이벤트는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슬픔과 고통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컸다. 우려하는 부분이 무엇인지는 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 그것도 내 자식을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곳으로 떠나보내고 나면 누구나 억지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라도 만나고 싶은 것이다. 그게 꿈이든 가상현실이든 어떻게라도 만나고 싶은 것이다. 나도 아들을 만나고 싶었다. 다시 만나서 꼭 작별인사를 하고 싶었다. 사랑한다고 말하고, 다시 만나자고 약속해주고 싶었다. 그게 내 마음의 죄책감을 덜어내고 조금이라도 편해지고 싶어서 그런 것이라고 말해도 어쩔 수 없었다. 

나보다 키가 작던 열세 살 아들은 가상현실 속에서 훌쩍 키가 커 있었다. 내가 상상만 하던 열여섯의 아들을 마주하니 가슴이 뛰고 온몸이 떨려왔다. 그렇게 나는 나보다 커진 아들을 만져보겠다고 연신 허공에 손짓을 하면서 가상현실 속에 아들과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 내가 듣고 싶었던 이야기를 나누며 작별인사를 나눌 수 있음에 안도했다. 

그래서 그렇게 아들을 다시 만나 좋았냐고, 소원성취 했냐고 묻는다면 후회는 없노라고 말하고 싶다. 지난 6개월 "너를 만났다" 촬영 기간 내내 아들을 더 많이 만날 수 있었고, 내 마음도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조용히 회피하고 묻어두고만 싶었던 마음들을 끄집어내며 괴롭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했지만 아들을 만나기 위해 꼭 필요한 시간들이었다. 이제야 이 끝나지 않을 슬픔을 마주할 용기 정도는 생긴 셈이다. 매년 돌아오는 아들의 생일은 기쁘면서도 슬픈 날이 되겠지만 다시 만난 아들이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 말라"라고 해준 말이 꽤나 위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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