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나게 살자
04/08/24  

주변의 어르신들이 한 분, 두 분 세상 떠났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필자도 멀고 긴 여행의 닻을 내려야 할 때가 그리 멀지 않았음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세상의 이치를 깨닫듯이 머리로, 혹은 마음으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다. 육신의 변화를 통해서 서서히 내 몸이 인식한다. 어르신들이 9수를 넘을 때마다 육신의 움직임이 다르다고 하는데 실제로 그러하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육신의 변화를 거부할 수는 없다. 사람들이 근력운동을 하고 매일 걷고 저마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체력을 유지하고 근육이나 피부의 노화를 방지하기 위해 각가지 노력을 경주하지만 육신의 노화를 근본적으로 막을 수는 없다. 오히려 자신의 체력이나 체격에 맞지 않은 운동을 하거나 과도한 운동 등의 부작용으로 여러 가지 육체적 문제를 유발하기도 한다.

남들 보기 좋으라고 내 몸을 맞추거나 가꿀 필요는 없다. 겉모습이 아무리 건강하고 젊어 보여도 속은 병들고 쇠약한 상태라면 그야말로 외화내빈에 다름없다. 오히려 비록 겉모습은 조금 나이 들고 연약해 보이더라도 건강하다면 이것이 실속 있고 바람직한 것 아니겠는가? 남에게 보이기 위해 애쓸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젊어서는 육신이 늙더라도 마음만 젊게 갖는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윌리엄 울만의 'Live with enthusiasm'이라는 시를 교과서처럼 외우고 다녔다. 'Youth is not a time of life, It's a state of mind(청춘은 인생의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다). Years wrinkle the skin, but to give up enthusiasm wrinkles the soul(세월은 살갗을 주름살지우지만 정열을 포기하는 것은 영혼을 늙게 한다).'이라고 외쳤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을 최근에 깨닫게 되었다. 젊음은 인생의 한 시기임이 분명하다. 아무리 열정을 포기하지 않는다 해도 육신은 물론 우리의 마음도, 정신도, 영혼도 병들고 늙어가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울만의 시는 나이든 이들의 아우성이요, 외침에 불과하다. 그러하기 때문에 그렇지 않게 살아가자는 절규인 것이다.

나이 드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나이 듦을 통해 저절로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되는 경향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젊어서는 끓어오르는 피를 식히기 위해 명상을 즐겨했으나 이제는 따로 명상을 하기 위해 시간을 낼 필요가 없어졌다. 아무 때고 어디서고 내가 그 어떤 자세에서도 마음의 평온을 가져올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젊어서는 참지 못하고 불끈불끈하곤 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못하고 성질나는 대로 행동했다. 그러나 나이 들고 부터는 화를 억제하고 스스로 가라앉히게 되었다. 세상을 성질대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저절로 터득하게 되었으니 나이 듦의 혜택이다.

타인들의 말을 귀담아 듣게 된 것도 나이가 가져다 준 변화이다. 젊어서는 내 의견과 다를 경우에는 그 사람이 말하고 있을 때 듣지 않고 내가 그에게 할 말을 정리하고 준비하고 있다가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내 말을 쏟아 부었다. 심한 경우는 그가 말을 하고 있는 도중에 그의 말을 끊고 내 주장을 펴기도 했다. 그러나 나이 들어서는 상대가 나와 정 반대의 의견을 주장하더라도 그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일정부분 수긍하기도 하고 나의 반대가 꼭 필요하지 않은 경우는 입을 닫기도 한다.

또, 나이 듦은 여유를 선물했다. 이제는 급한 일도 서두르지 않는다. 서두른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우리가 급하다고 생각하는 일도 우리의 생각이 그런 것이지 정작 급한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 세상에 급한 일은 없다. 시급을 요하는 일이라고는 목숨과 관계되는 것 말고는 없다.

나이 60이 넘어서는 내가 떠난 세상에 남겨진 식구들과 친지들을 위해 평소에 준비하고 살아야 한다. 이렇게 얘기를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창하게 생각하는데 의외로 그 준비는 아주 간단하다. 내가 하루하루를 즐겁고 유쾌하게 살면 된다. 100살에 떠나든, 90에 떠나든 60부터 남은 삶을 주변의 친구나 친지, 가족들과 어울려 재미나게 살면서 내 마음 편히 지내는 것이 그들이 편한 마음으로 나를 떠나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다. 모두 내가 없어도 잘 살 거다. 사는 날까지 재미나게 살면 된다.

신명나는 세상, 내가 만들어 가면서 재미나게 살자!

안창해. 타운뉴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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