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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중에 나를 울린 남편의 문자
04/15/24  

친구들과 2박 3일 제주도로 여행을 다녀왔다. 지난 몇 달 동안 마음이 어지럽고 나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는 날들이 많았는데 여행을 다녀오는 게 도움이 되었으면 했다. 다행히 남편이 흔쾌히 다녀오라고 해서 내가 챙겨야 할 모든 것을 뒤로하고 정말 홀가분한 마음으로 비행기를 탔다. 그리고 여행 기간 내내 최대한 집안일이나 아이들에게 간섭하지 않으려고 의도적으로 생각을 피했다. 

그렇게 여행 마지막 밤이 되었고 친구들과 숙소에서 맥주 한 캔씩 하며 여행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그때 남편이 장문의 문자를 보내왔고 문자를 확인하는 순간 바로 눈물범벅이 되어버렸다. 나 없는 시간 동안 고군분투했을 남편이 짠하기도 하고 남편이 삼 일간 느꼈던 그 감정을 매일 느끼면서 버텨야 하는 나 자신도 가엽고 성장하기 위해 질풍과 맞서고 있는 우리 아이들도 참 힘들겠다 싶고... 뭔가 매우 복잡한 심정이 되어버렸다. 제주에서 나를 울린 남편의 문자 전문은 아래와 같다. 남편의 진심과 내가 느낀 감동을 박제해두고 싶어서 이곳에 남겨본다.

예전에 디즈니 만화가 한참 유행일 때 미키를 앞세워 디즈니 캐릭터로 동화책이 있었다. 안데르센 동화 같은 이야기를 디즈니로 그려낸 동화책이었다. 그 중에 한 가지 기억나는 이야기가 있다. 구피가족을 필두로 아내와 남편이 역할을 바꿔 며칠 생활을 하는 내용으로 결론은 서로 상대를 이해하고 감사하며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는 이야기로 역지사지가 그 핵심이다.

아내가 떠났다.멀리멀리 제주도로. 친한 동네 친구들과 함께. 그들의 노고를 취하하며. 그들의 눈부신 봄날을 만끽하러. 과거에도 몇 차례 이런 일이 있었고 며칠 아내의 빈자리를 메우는 일을 해본지라 흔쾌히 허락하였다.

그런데 오산이었다. 아니 오만이었다. 가족의 변동을, 변화의 흐름을 읽지 못했다. 예전의 고만고만한 어린이들이 아니다. 중학생 2명에 초등학생인 막내도 이제 고학년이다. 예전처럼 헛기침에 칼같이 움직이던 아이들은 더 이상 없다. 오히려 말 한마디 하려면 내가 조심조심 눈치를 보다가 말을 꺼내는 요즘이다. 그 와중에 등교시간, 하교시간, 등원시간, 하원시간마저 다 다른 시간이라 아침을 한 끼 같지 않은 세 끼로 줄줄이 차리고 한 끼 같은 저녁은 적으면 2번, 많은 면 3번을 차린다.

어제는 요즘 아주 날카로운 우리 집 K장녀 눈치를 보며 딸이 가장 좋아하는 카레로 저녁상을 내었다. 딸의 과외 수업시간에 맞춰 차린다고 재택근무가 끝나자마자 부리나케 준비했지만 딸은 친구와 저녁약속이 있다며 저녁을 안 먹겠단다. 누굴 위해 카레를 만든 건가. 한술도 뜰시간이 없다며 쌩 나가는데 힘이 쭉 빠졌다. 

"그냥 좀 두지. 밥이 뭐 대수라고. 그냥 한 번에 차려서 주지. 좀 식으면 어때... 메뉴는 통일하지 뭘 저렇게 다 맞춰주나... 저런다고 애들이 알아주니?"그동안 내 마음속에 맴돌던 아니 어쩌면 아내에게 직접 말했던 내용의 말들이 내 뒤통수를 마구 내려친다. 아... 이런 거구나! 

그동안 아내가 왜 발을 동동거렸는지. 왜 저리 슬퍼하는지. 난 식모인가?라고 생각하는지. 단 하루 만에 느껴버렸다. 몇 년의 시간, 아니 십 년이 넘는 시간을 어떻게 버텼을까. 단 하루 만에 느껴버린 이 복잡하고 미묘하며 슬프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한 이 답답한 감정을 어떻게 그리 오래 참아냈을까?

그래도 맛있다며 떠드는 막내의 응원, 식탁에서 재잘재잘 뭐든 쏟아내는 셋째, 말은 별로라면서도 남김없이 비워내는 장녀...... 이런 걸로 버텼을까? 일상의 무게, 그 큰 무게를 묵묵히 버텨준 아내가 너무나도 자랑스럽고 사랑스럽다. 그 큰 희생을 무엇으로 갚을 수가 있을까? 앞으로 이 큰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낼 수 있게 도와야겠다. 일단 1프로 했다. 이번 3일(365일 중)늘 고맙고 존경스러운 아내에게 사랑과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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