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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상담을 시작했다
04/22/24  

상담소 가는 길은 늘 추웠다. 고층 빌딩숲 속이라 그늘이 져서 그런가 상담소로 향하는 길은 이상하게 서늘하고 추워서 몸을 잔뜩 움츠리게 되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19층으로 올라가 상담실 안으로 들어가면 완전 딴 세상, 꼭대기층이라 그런가 해가 잘 들어오는 그곳은 늘 심하게 따뜻했다. 심지어 패딩을 입고 갈 정도로 추운 날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대기 공간에 앉아있으면 포근하다 못해 덥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고 상담을 마치고 나오면 눈물인지 땀인지 몸이 축축한 느낌마저 들었다.

나는 요즘 심리 상담을 받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은 딸을 데리고 가고, 한 번은 나 혼자 간다. 사춘기에 접어든 딸 때문에 시작한 상담이었다. 평생을 살아오며 나름 위기에 시기를 겪을 때도 있었고 심장이 갈가리 찢기는 참척의 아픔을 겪기도 했지만 계속 피하고 고사했던 상담이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면서 스스로 견뎌내야 한다고 나 자신을 채찍질해 왔다. 그런데 아이들이 본격적으로 사춘기를 맞이하자 그 아이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았고 나는 매번 이성을 잃고 감정적으로 휘둘렸다. 10대 아이들과 덩달아 같이 흥분하거나 뒤에 가서 눈물을 훔치는 나 자신이 형편없게 느껴졌다. 위태로워 보이는 아이들을 지켜보는 것이 불안했고 불안은 결국 나를 궁지로 몰아세워 더 이상 스스로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꽤나 목돈을 지불하며 도움을 받기로 한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상담료는 나에게 굉장히 부담되는 금액이었다. 딸과 내가 1회 상담을 받으려면 한 달 치 학원비 정도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내가 조금 더 인내했거나 지혜로운 사람이었다면 이런 낭비를 하지 않고도 이 시기를 무난히 넘겼을 텐데…...라고 생각하니 내가 꽤나 유난을 떠는 사람인 것 같기도 했고 부모로서 자격 미달의 루저가 된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이 절실해지니 뭐라도 해야만 했고 결국 내 발로 상담소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상담을 통해 돌아보니 자녀를 양육하며 내가 느끼는 불안은 잘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하지만 양육자가 불안을 느끼면 그것은 자녀에게도 고스란히 전이되기 때문에 양육자가 불안을 극복하고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내 아이를 지켜낼 것이다"라는 확신을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아이가 혹시 길을 잃고 헤매는 일이 생기더라도 내가 아이를 지켜낼 것이고 함께 방향을 찾아주고 지켜줄 거라고 믿으면 크게 불안해할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자녀 역시 부모가 든든하게 내 뒤를 지켜주고 있다는 것을 알면 사춘기 질풍노도의 시기 또한 잘 버텨낼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그럴듯한 이야기들을 듣고 상담을 받고 나오면 조금은 답답한 가슴이 트이는 것 같기도 했다. 나도 노력하고 연습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러다 보면 다 잘 될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제 아무리 고가의 유능한 선생님의 상담도 그 효과가 그리 길지는 않았다. 며칠만 지나면 나는 또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렸다.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만족할 줄 몰랐고 '과연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인가?' 불안했고 다시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나도 10대 때 이랬나? 우리 부모는 나는 어떻게 키웠지? 처음이라 그런가? 이게 맞나? 그렇게 나는 또 다음 상담 예약을 하고 있었다.

상담 선생님은 언제나 두서없는 나의 이야기를 차분히 들어주셨다. 적당히 공감해 주셨고 중간중간 예리한 질문을 던지며 나 스스로 북 치고 장구 칠 수 있게 판을 깔아주셨다. 나는 혼자서 씩씩거리며 하소연을 하다가 선생님이 "어…... 그랬군요. 힘드셨겠어요."라고 공감해 주시면 폭풍 눈물을 흘렸고 "근데 왜 그랬을까요?"하고 질문을 던지면 열심히 답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결국 선생님이 나의 문제들에 그럴듯한 솔루션을 준다기보다는 나 스스로 실컷 떠들다가 질문에 답하며 솔루션을 찾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거라면 굳이 큰돈을 들여가며 번거롭게 상담소를 찾을 필요가 없는 게 아닌가 싶겠지만 그게 또 그런 게 아니다. 객관적으로 큰 그림을 봐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내 아이와의 관계에 메신저 역할을 하면서 적당히 나를 위로하고 나를 북돋아주면서...... 아니 다 필요 없고 어쩌면 나는 그냥 아무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에게 기대어 내 이야기를 털어놓고 눈물을 쏟아내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나면 아주 잠시나마 속이 시원했으니깐...... 그게 전부였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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