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
홈으로 발행인 칼럼
어느 봄날의 해프닝
05/06/24  

봄이 서서히 물러가고 있다. 뒤뜰에 토마토가 10알 달렸다. 잎이 다 떨어져 가지만 앙상하게 있던 플루메리아에 새 순이 움트고 있다. 저 플루메리아가 활짝 피어 뽐낼 날도 머지않았다. 뒤뜰에서 봄을 즐기고 있는데 친구가 전화했다.

USC 동창 모임에서 무료 식사권을 두 장 받았다면서 함께 가자고 했다. Rowland Heights에 있는 '와규 하우스(Wagyu House by the X pot)'라는 식당이다. 식당 이름에 '와규'가 들어가는 것으로 보아 대충 어떤 식당인지 짐작이 갔다. 더군다나 매일 아침 공원에서 함께 걷는 내 친구도 와규 고기를 도소매로 팔고 있고, 와규 식당을 세 곳에서 운영하고 있어 더 친근감이 느껴졌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공짜 점심을 먹는다는 생각에 신이 나있었다.

와규는 일본의 육용 소를 가리키며 일본소라는 뜻에서 ‘와규’라고 부른다. 즉 특정한 품종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일본에서 개량한 육용종 소들을 모두 와규라고 부른다. 일본 정부가 19세기 후반 육식을 장려하면서 일본 재래종 소와 외국산 소를 교잡하여 개량한 것이 와규의 시작이다. 1920년대에는 지역마다 고유품종을 개량하는 방식으로 발달했다. 처음에는 일소와 고기소의 두 가지 목적으로 개량했으나, 농업의 기계화가 이루어지면서 1977년부터 와규를 육용종으로 공식 선언했다. 이후 육질 강화를 위한 개량 사업이 지속되었다. 와규 고기는 마블링이 뚜렷하고 불포화지방산이 많아 최고급 육용종으로 꼽힌다.

와규를 판매하는 친구 식당에서 고기를 가끔 사다 먹었기에 와규가 좋은 고기임을 알고 있었던 지라 큰 기대를 하고 식당을 찾았다. 예약 여부를 묻는 종업원들에게 예약은 하지 않았고, 우리는 무료 식사권을 갖고 왔다고 보여주었다. 그러자 식사권 한 장으로 한 사람만 식사가 가능하다고 했다. 우리는 식사권이 두 장이니까 두 사람이 식사할 수 있지 않냐고 물으니 한 사람은 식사권을 이용하고 다른 한 사람은 돈을 내고 먹어야 한다고 했다.

그럼 표 두 장을 내고 따로 앉아 먹겠다면서 내가 옆 테이블에 앉았다. 그러자 종업원이 매니저에게 물어보고 오겠다고 했다. 잠시 후 돌아온 종업원은 둘이 한 테이블에 앉아 먹어도 좋다고 했다. 친구가 내 테이블로 와서 앉았다.

우리에게 종업원이 처음이냐고 물었다. 처음이라고 하자 장황하게 한참을 설명해주었다. 이것저것 종업원의 추천을 받아 국물을 정하고 고기를 택하고 소스를 갖다 먹고 디저트도 먹었다. 우롱 티를 주문하자 차 값은 따로 받는다고 했다. 얼마냐고 물으니 8.99라고 말했다. 우롱 티도 시켰다.

우리는 우롱 티 값만 내고 팁을 따로 10달러 정도 주면 된다고 생각하고 빌을 달라고 했다. 종업원이 건네 준 인보이스에는 세금을 포함해서 $132.42, 팁 $24.18 까지 포함해서 $156.60이 찍혀 있었다. 우리는 무료 식사권을 내고 먹었는데 이렇게 많이 청구하냐고 친구가 물었다. 그러자 고기 값은 받지 않았고, 그 나머지 비용을 청구한 것이라고 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소스 값으로 $5.98, 와규 국물 $24.99, 뼈다귀 우려낸 국물 $20.99, 새우 볼 $12.99, 두부 $5.99, 와규 산적 $14.99, 와규 비빔밥 $19.99 등이 적혀 있었다.

동창회에 무료 식사권을 기증한 사람은 생색을 잔뜩 냈을 텐데. 공짜인줄 알고 그 식사권을 들고 온 사람은 돈 내고 먹어야 한다는 사실이 참으로 기이하게 생각되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친구는 미안해 어쩔 줄 몰라 했고, 나는 기가 막혀 나오는 헛웃음만 켜고 있었다. 고기 값만 받지 않았고, 국물 값으로 $45을 내고, 두부 값, 소스 값으로 각각 $6씩, 비빔밥 값으로 $20을 따로 내고 식사를 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거기다 팁도 일방적으로 내라고 했다.

그리고 보면 우리 한국인들이 운영하는 식당들의 가격은 정말 좋은 편이다. 음식을 시키면 각종 반찬이 즐비하고 따뜻한 차도 무료로 마실 수 있다. 일부 식당에서는 야채, 생선류, 조개류 등도 비용을 따로 내지 않고 먹을 수 있고, 고기도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다. 국물도 골라 먹을 수 있는 식당도 있다. 음식 종류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두 사람이 $40~$80 이면 배불리 먹을 수 있다.

그런데 고기 값을 제외하고 $156.60이라니 정말 말도 안 된다. 친구는 더 이상 우리 같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여러 사람에게 알려야 한다고 했다. 나는 별로 그럴 생각은 없다. 고기 값까지 내고 먹었으면 $200도 넘게 나왔을 텐데 싸게 먹지 않았는가. 2024년 어느 봄날 있었던 해프닝으로 웃어넘기기로 한다.

이렇게 봄날은 간다. 어서 빨리 플루메리아 향기 맡으며 잘 익은 토마토를 따서 한 입 팍 베물고 싶다.

안창해. 타운뉴스 발행인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