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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辱)
04/24/18  |  조회:225  

몇 해 전, 한국 국적 비행기 탑승객 가운데 한 여성이 땅콩을 규정대로 주었느니 안 주었느니 하며 승무원들에게 고함치고 욕을 퍼붓고 항공기를 회항시키는 등 소란을 떨어 한국 사회에서‘갑질논란’을 일으킨 것은 물론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일이 있었다. 그녀는 그 항공회사 오너의 장녀로 같은 항공사의 부사장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역시 같은 항공사 전무로 일하고 있는 그녀의 여동생이 세간의 비난을 받고 있다. 비난은 그녀의 언니처럼 이른바‘갑질’로 인한 것이었다. 그녀는 지난달 자사 관련 광고 회의에서 광고대행사 직원에게 물컵을 던지면서 고함을 지르고 욕을 퍼부은 것으로 알려졌다.

 

설상가상으로 자식들 선에서 그쳤으면 좋았을 것을 뒤이어 이 자매의 어머니가 자택 공사를 하던 작업자들에게 욕을 퍼부으며 갑질을 해 댄 사실이 녹음을 통해 세상에 드러나고 말았다. 작업자들은‘사람을 이렇게 대할 수 있나 싶어 너무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욕(辱)’에는 네 가지 다른 뜻이 있다. 첫째, 남의 인격을 무시하는 모욕적인 말 즉, 辱說의 줄인 말이다. 또 수고를 속되게 이를 때도 욕이란 말을 사용한다‘. 날도 더운데 여기까지 오느라고 욕 보았구나.’처럼. 더불어 잘못을 꾸짖거나 나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그는 너무 인색하여 동네 사람들에게 욕을 먹는다.’처럼. 마지막으로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을 일컫기도 한다‘. 그는 주인에게 별별 욕을 다 당하고도 충성을 다했다.’처럼. 물론 앞의 이 가족들은 첫 번째 경우에 해당한다.

 

그런데 동서양을 막론하고 욕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먼저 신분 관계에 따른 욕이다. 이는 대부분 부모를 치욕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그 자식을 비하하는 형식이다. ○○자식 혹은 ○○새끼라는 형식으로 사용된다‘. 호로자식’이나‘Son of a bitch’등이 그 예이다. 욕을 듣는 사람의 부모를‘호로’즉, 오랑캐도 부족해 그노비로 전락시키고 혹은‘bitch’즉, 암캐로 만들어 욕을 듣는 당사자를 더욱 치욕스럽게 만든다. 부모와 자식 세대 간의 위계에 입각한 욕이라고 할 수 있다.

 

신체의 특정 부위, 혹은 성과 관련된 욕도 적지 않다.신체의 특정 부위를 언급하며 상대방이 그와 같다고 하는 말이나 서양에서 가운뎃손가락을 치켜세우는 것이 바로 그런 예이다. 욕을 하는 것이니 당연히 상대방을 낮추는 비어가 붙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사람 대신‘놈’, 혹은‘새끼’라는 말이 접미사처럼 붙는다. ○ 같은 놈, ○ 같은 새끼처럼.때에 따라서는 욕을 듣는 당사자를 동물 수준으로 만들기도 한다. 앞의‘○ 같은 놈’의 형식 ○에‘개’를 집어 넣으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들이 복합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예를 들어‘○새끼’처럼. ○ 안에 개를 넣으면 욕을 듣는 당사자의 부모를 동물로 비하해 욕을 듣는 사람까지 싸잡아 동물로 만들어 버린다. 혹은‘○팔 새끼’처럼 ○안에 여성의 특정 신체 부위를 대입하면 욕을 먹는 당사자의 어머니는 몸을 파는 여자로 전락하고 만다. 성과 위계에 의한 욕이 결합된 형태이다.

 

욕은 화를 참지 못하거나 분을 못 이길 때 밖으로 표출되어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어떤 형태이 욕이든지 듣는 상대방뿐만 아니라 그저 주위에 있다가 들려서 들은 사람들까지도 불쾌하게 만든다. 물론 자기 자신을 향해 자조적으로 욕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 때로는 혼자 욕을 하면서도 부끄러울 때가 있다.

 

화가 나면 잘 참지 못하고 표출 하는 성격 탓에 과거에는 욕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미국에서 낳고 자란 아들에게 화가 나면 마구 욕을 하기도 했다. 말끝에‘새끼야’을 넣어 가면서 말을 한 것이다“. 너는 그것밖에 못해 새끼야!”처럼. 그런데 어느 날 그 아들이 나에게 말을 하던 중 말끝에 ‘새끼야!’를 붙이는 것이 아닌가! 그 말을 듣는 순간 둔기로 머리를 강하게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잠시 멍하고 있다가 이내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아들은 아빠가 말끝마다‘새끼야!’를 붙여 자기도 그렇게 해 보았다고 했다. 웃음 끝에 찾아온 것은 심한 자책감이었다. 부모로서 좋은 말을 가르치지는 못할망정 하물며 욕을 가르치고 있었다니. 등골이 오싹해져 왔다. 이후로는 누구에게든 욕하는 것을 삼가게 되었다.

 

감정을 참지 못해 하는 욕이든 아님 친밀감을 드러내기 위해 하는 욕이든, 어떤 경우든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유쾌할 일이 없다. 서로가 기분 좋은 말을 주고받는 것이 인간관계의 기본 가운데 기본이다.

 

부족함이 없이 사는 대한민국 최상류층 가족의 갑질 논란을 보면서‘욕’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안창해. 타운뉴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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