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
05/28/24  

딸의 친구 엄마로 만난 언니의 친정어머니 부고 문자를 받았다. 4년 전 나는 다른 건 몰라도 부고 소식을 접하면 가능하면 꼭 함께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었다. 내가 상을 치러보니 찾아와 주는 것이 말도 못 할 정도로 고맙고 감동적이었기 때문이다. 대단한 친분이 아닐수록 더 그랬다. 그래서 '갈가말까 망설이는 마음이 들 때면 무조건 가는 것을 선택해야지'하고 결심했었다.

대형병원의 장례식장…...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그곳, 아들의 장례식이 있었던 그곳으로 향하는 마음이 무척이나 무겁고 어두웠다. 고인의 명복을 빌어드리고 지인의 손을 잡았다. 어머니는 8년 전 유방암 투병을 시작으로 몹쓸 암세포가 번져가기 시작했고 마지막 6개월은 뇌까지 병들어 극심한 섬망이 찾아왔고 결국 생사와 사투를 벌이시다가 임종하셨다고 하였다. 그녀는 묻지도 않은 이야기들까지 참으로 성심성의껏 어머니의 병이 진행된 시기와 과정, 또 최근 병이 얼마나 끔찍하게 악화되었는지, 어머니께서 얼마나 생에 미련이 많으셨는지 등등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아마도 어제부터 쉴 새 없이 장례식장에 들어오는 조문객들을 만날 때마다 같은 이야기를 반복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묻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마치 AI처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4년 전 나도 그랬으니깐......

새까만 상복을 입으니 하얀 얼굴이 유난히 더 새하얗게 보이는 그녀는 내가 아는 한 아주 선한 사람이었다. 자녀들이 어렸을 때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떠났고 홀로 아이들을 키우며 열심히 살아가면서도 늘 미소를 잃지 않았다. 가끔 오가며 우연히 나를 만나면 늘 환하게 웃어주었는데 그녀의 구김살 없는 웃음이 참 좋았다. 그래서 더 깊이 알아갈 기회가 없었지만 마음으로 좋아하고 응원하는 사람이었다. 부고 문자를 받자마자 참담한 마음으로 그녀에게 문자를 보냈더니 "어쩜 그렇게 글을 잘 쓰니…... 너무 위로가 된다."하고 바로 답장을 보내왔다. 위로의 문자가 칭찬을 받으니 멋쩍었지만 그것 또한 솔직한 그녀의 표현이라는 것을 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테이블을 하나 잡아 앉았더니 빠르게 음식상이 차려졌다. 식사를 할 거냐 다과를 할 거냐 묻는데 우물쭈물 대답을 못하는 사이에 식사가 준비된 모양이다. 나는 목이 타서 집에서 가져온 생수를 한 모금 마셨다. 마지막에 어머니를 집에서 돌보며 간병한 이야기는 참으로 감복할 만했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동생과 아침저녁으로 당번을 정해 어머니 곁을 지켰는데 아주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 어머니께서 숨을 거두셨다고 했다. 영화처럼 마지막 순간에 잠시라도 눈을 뜨시고 한마디 남겨주시길 바랐지만 어머니는 주무시다가 그대로 영원히 잠드신 것이다. 예견된 죽음이었지만 임종을 지키지 못한 아쉬움을 여러 번 되뇌는데 내 마음이 울컥했다. 안타깝지 않은 죽음이 어디 있으랴......

그녀의 이야기를 듣느라 한참 동안 음식에 손도 못 댔더니 그녀는 "아이고 어서 먹어. 여기 음식 맛있잖아..."라고 말했다. 나는 부정하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장례식장에서 주는 식어빠진 음식들은 묘하게 그런대로 먹을 만하다. 장례식장에 갈 때마다 시장했을 터는 아닐 텐데 도저히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을 것만 같은 그곳에 나는 늘 밥을 먹었다. 아니 나뿐 아니라 대부분의 조문객들이 그랬다. 장례식장에서 유족들이 음식을 권할 때 거절하지 않는 것이 예의라고 들은 것도 같다. 나도 빨리 한술 뜨고 일어나야지 했는지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과 한참을 앉아 있었다. 고인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가자 저마다 질풍노도의 십 대 자녀들 이야기가 한참 이어졌다. 그렇게 우리는 꽤 오랜 시간 웃다가 눈시울을 붉혔다가 냅킨으로 눈물을 훔쳤다가를 반복했다.

상에 차려진 지 오래되어 윤기를 잃은 홍어회무침을 한 젓가락 입에 넣었다. 매콤 새콤 쌉싸름하게 양념이 잘 배어서 제법 맛이 괜찮았다. 죽음을 이야기하면서도 나에게 식욕과 미각이 남아있다는 사실에 씁쓸한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지인을 꼭 안아주고 장례식장 밖으로 나왔더니 해는 어느덧 뉘엿뉘엿 기울고 있었다. 집에 있는 아이들 저녁 식사를 챙겨주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질리도록 먹으면서도 끊임없이 밥 걱정을 하고 끼니를 챙기는 것은 산 사람만이 누리는 특권이라는 생각을 하며 숨이 가쁘게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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