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공포
03/17/25  

얼마 전 ‘결혼은 공포’라는 제목의 기사를 읽었다. 요즘 청년들에게 결혼은 두려운 것, 출산은 선택할 필요조차 없는 일이 되어버린 듯했다. 결혼 21년 차, 아이 넷을 둔 나는 이 흐름이 안타깝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그들의 고민이 이해되기도 했다. 세상이 변했다. 성실히 일하면 집을 장만할 수 있고, 아이는 ‘키우면 크는 것’이라던 시절과는 다르다. 하지만 그런 현실적 이유들을 다 제쳐두고라도, 결혼과 출산이 꼭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나는 말하고 싶다. 나는 결혼을 후회한 적이 없다. 단 한 번도.

“우리가 완벽하지 않아 다투고 부딪히는 것도 결혼의 일부라고 생각하니 좀 덜 속상하더라.” 얼마 전 남편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맞다. 결혼은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의 완성이 아니라,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이다. 처음엔 기대가 컸다. 초등학교 동창이었던 남편과 다시 만나 결혼을 결심했을 때, 우리는 평생을 함께할 동반자를 얻었다는 기쁨에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함께 살아간다는 건 영화 속 로맨틱한 장면들의 연속이 아니었다. 사랑이 있어도 다퉜고 함께 있어도 외로웠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결국엔 다른 인격체이고, 사랑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현실적인 문제들이 끊임없이 생겨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이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함께 성장하고, 함께 기뻐하고, 함께 힘든 시간을 버티는 것. 그 과정에서 얻는 것들은 혼자서는 절대 알 수 없는 깊이와 무게를 가진다.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이 가장 값진 시간을 만들어내기도 하니까.

아이를 낳는다는 건 단순한 선택이 아니다. 그것은 인생에서 가장 큰 전환점이 된다. 첫아이가 태어났을 때,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작은 생명을 품에 안았을 때 세상에서 가장 강한 존재가 된 것 같았다. 이 아이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현실은 그리 낭만적이지 않았다. 밤새 아이를 안고 울던 날이 더 많았다. 아프고 힘들고 외로웠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단순히 힘든 일이 아니라,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본질적이고 순수한 사랑을 배우는 과정이다. 아이들이 내 인생의 우선순위를 바꿔놓았고, 책임지는 법을 배웠고, 무엇보다 주기만 해도 더 주고 싶은 사랑이 존재한다는 걸 깨달았다. 부모가 된다는 건 희생이 아니라, 사랑을 통해 더 큰 행복을 경험하는 일이었다.

물론 결혼도, 출산도 의무가 아니다. 독신주의, 비혼주의, 딩크족의 삶도 충분히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딱히 그런 철학이 없음에도 결혼과 출산을 무조건 두려워하는 이들에게는 말해주고 싶다. 너무 겁먹지 말라고. (부모, 선생님 말씀도 안 듣는데 내 말을 들을 리 없겠지만 그래도…) 나는 내 아이들이 좋은 사람을 만나 사랑하고, 또 부모가 되는 경험을 하길 바란다. 단순히 ‘해야 해서’가 아니라, 그 길을 걸으며 얻을 수 있는 기쁨과 가치가 너무 크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가 인기다. 아이유와 박보검의 시대를 뛰어넘은 사랑은 애틋하고 가슴 뭉클하지만, 누구에게나 그런 사랑이 있지 않은가. 25년 가까이 함께한 우리의 사랑과 역사는 결코 그에 못지않다. 내 남편은 극 중 관식보다 훨씬 절절하게 내 곁을 지키고 있고, 나는 애순보다 큰 목소리를 가졌으니 호루라기보다 커다란 그의 사이렌 정도는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돌아보면, 결혼과 출산은 나를 완전히 부수고 다시 조각해 맞추는 과정이었다. 때로는 아프고, 때로는 눈물겨웠지만, 신기하게도 그렇게 부서질 때마다 나는 더 단단해지고, 더 깊어지고, 더 사랑이 많아졌다. 결혼은 공포가 아니다. 출산과 육아는 희생만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가장 아름다운 모험이며, 그 끝에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행복 또한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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