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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확천금
07/23/18  

오랜만에 친구들과 만났다. 식사 후에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던 중 평소에 말이 별로 없는 한 친구에게 누군가가 물었다. 어떻게 지내는가.

 

근황을 묻자마자 친구는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워낙 말이 없던 친구인지라 이야기가 거침없이 쏟아지자 다들 놀랐다. 미리 준비라도 해두었던 것처럼 이야기는 그치지 않고 계속되었다.

가만히 들어보니 새로 시작하려는 사업에 관한 내용이었다. 아는 분이 어릴 때 길을 걷다가 정제 되지 않은 작은 금덩어리(금광석)를 주웠고 그 지역을 잘 기억해 두었다가 최근에 그 땅의 채굴권을 얻어 금을 캐기 위한 사업을 시작하는데 동업하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투자가를 구하고 있으며, 자신은 직접 투자를 하지 않고 정부의 관련기관에 서류를 제출하여 채굴권 등을 받는 계통의 일을 한다는 것이었다.

 

듣고 있던 친구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친구는 자신의 말이 허황된 것이 아님을 입증하기 위해 이미 준비된 자료들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각종 서류와 사진, 그리고 지방 정부로부터 받은 공문서 등을 책상에 한 가득 펴놓았다. 터무니없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앞섰으나, 또 한편으론 있을 수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도 들었다.

 

친구들이 워낙 관심 있게 이야기를 듣고 질문을 했었기에 후일담이 궁금했으나 아무런 소식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러일전쟁 당시 울릉도 앞바다에 침몰했다는 보물선(러시아 전함)에 대한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러시아의 전쟁영웅 드미트리 돈스코이(1350~1389) 대공의 이름을 딴 전함, 드미트리 돈스코이함이 1905년 러일전쟁 당시 울릉도 앞바다 70㎞ 해상에서 침몰했다. 배 안에는 150조 원에 상당하는 금화가 실려 있었으며 그 배를 신일그룹이 7월 15일 울릉읍 저동리에서 1.3Km 떨어진 수심 434m 지점에서 발견했다는 보도였다. 소식을 전한 매체는 전함이 과연 식량이나 전쟁 무기가 아닌 금화를 그렇게 많이 싣고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을 나타내며 신일그룹의 발표에 일침을 가했다.

 

하지만 보물선을 발견했다는 측은 당시 원거리 항해를 해야 했던 돈스코이 함이 전함 운영에 필요한 각종 경비와 장병들의 식량 구입, 장병 임금 등을 금화로 지급해야 했기에 대규모의 군자금을 싣고 있었고, 당시 해군 중장인 크로체스 도엔스키의 쓰시마 해전 참전 기록에도 배 안에 금화와 금괴 등을 실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고 주장했다.

 

7월 15일 신일그룹이 보물선을 발견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주식시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신일그룹의 최대주주라고 알려진 제일제강의 주가가 급등했으며, 거래소에서 투자주의 유망 종목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제일제강이 자사는 보물선 사업과 무관하며, 신일그룹의 최대주주가 아니라고 직접 공시하자 급락해 버렸다.

 

게다가 신일 그룹은 ''신일골드코인 국제거래소''라는 사이트에서 신일골드코인(SGC)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신일 골드코인''이란 암호화폐를 발급해 발굴되는 150조 금괴와 금화, 보물 등 이익의 10%를 배포된 코인수에 따라 전 세계 보유자들에게 배당하겠다며 신일그룹이 발행한 것이다. 7월 30일 ICO(가상화폐공개)를 하고 9월~10월 사이에 상장하겠다는 것이 신일그룹의 계획이다. 신일그룹이 주장하는 예상 상장가는 1 SGC당 약 1만 원이다. 객관적으로 황당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지만 실제로 투자하는 사람들이 있고, 제일제강 주가도 다시 올랐다고 한다.

 

사람들에게는 일확천금에 대한 은밀한 욕구가 있다.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생존경쟁 속에 사람들은 조급해지고 불안해지면서 단번에 목돈을 잡을 수 있는 행운과 기회를 꿈꾸게 된다. 이런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시도는 다양한 형태로 발현되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복권이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각종 복권은 비록 다양한 목적을 위해 발행 했다고는 하지만 사람들의 이런 욕구에 기초하고 있다. 게다가 당첨 확률이 몇 억분의 1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 당첨되는 사람도 있기에 일확천금을 꿈꾸는 사람들의 가슴에 불을 지른다.

 

그렇지만 어느 누구도 열심히 일하지 않고 복권 당첨에만 매달리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첨 될 확률은 거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복권을 구입하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당첨의 꿈을 꾸며 즐거워 할 뿐이다.

 

같은 맥락의 일확천금이지만 금덩이 채굴이나 보물선 인양은 복권 당첨과는 확연히 다르다. 복권 당첨에 대한 꿈이 오로지 개인적인 범위에 국한된 문제라면 금덩이 채굴, 보물선 인양, 가상 화폐 등은 집단적 혹은 사회적인 문제이다. 결과가 아예 없거나 예상과 다를 때의 개인적, 집단적, 그리고 사회적 파급력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차이가 나는 것이다.

 

거액을 투자하고 열정을 쏟아 금광 사업에 동참하려는 사람들과 보물선을 인양해서 일확천금을 얻으려는 사람들 모두에게 좋은 결과가 있기를, 아울러 꿈에 부풀어 투자한 많은 사람들이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일확천금의 꿈이 이루어져 그들 개인과 사회 발전을 위해 어떤 식으로라도 사용될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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