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며 살자
05/06/19  

친구와 보국사역 1번 출구에서 만나기로 했다. 약속시간 30분 전에 도착했다. 점심식사를 하면서 기다리기로 한다. 친구에게 식당에서 기다린다고 문자를 보내고 설렁탕을 한 그릇 시켰다. 친구는 설렁탕이 나오자마자 도착했다. 한 그릇 하자니까 점심을 방금 먹고 왔다며 사양한다.

 

여기서 정릉이 그리 멀지 않은 것 같다고 하니 친구는 여기가 바로 정릉이란다. 이 길 위로 큰 길이 예전에 정릉으로 들어가는 길인데 여기서 올라가면 그 길과 만난다고 했다. 정릉에 살던 한 친구가 생각났다. 중학교 시절 그 친구집에서 놀기도 했었다. 1년 전에 전화통화를 하면서 한국에 나오면 꼭 연락해서 만나자고 했었다. 친구에게 물었다. "혹시 J를 기억하냐?" 친구가 말했다. "아, 그 친구 며칠 전에 세상을 떠났어."

 

밥을 넘기기 어려웠다. 국물도 뜨기 힘들었다. 수저를 놓고 산으로 향했다. 친구도 나도 아무 말이 없었다.

 

J와 수십 년 만의 통화였다. 우리는 서로 반가워했다. 어린 시절 이야기도 하고 손주들 이야기도 했다. 친구는 강화도에 있다고 했다. 아니 강화도에 산다고 했다. 수화기를 놓으면서 한국에 오면 연락하라 했고, 그러마 약속했었다. 그러나 고국을 방문하면서도 연락조차 못했다. 그런데 불과 2년이 채 되지 않아 운명한 것이다.

 

친구와 산길을 걸으면서 한 걸음, 한 걸음 디딜 때마다 고인이 된 친구의 명복을 빌었다. 그가 고교 졸업 후에 어떻게 살았는지는 모른다. 그가 성인이 되어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저 학창시절 함께 하던 그때를 기억할 뿐. 내 안의 친구는 중고 시절의 그 얼굴, 그 모습 그대로이다. 하얀 피부에 크고 쌍꺼풀 진 눈, 얼른 보면 서양 사람처럼 보였다. 그 친구가 세상을 떠나고 없다.

 

산에서 내려와 친구와 밤늦도록 술잔을 나눴다. 친구도 나도 세상 떠난 친구의 이름을 올리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친구의 죽음을 애도했다.

 

동창생들과 어울려 이런 얘기 저런 얘기 하던 중에 한 친구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에게 그 친구 연락 되냐고 물으니 그 자리에서 전화를 걸어 바꿔주었다. 주변의 친구들이 다 들을 정도로 친구가 크게 얘기했다. 나도 저절로 목소리가 커졌다. 친구는 제천에 살고 있었다. 평생 근무하던 직장(세명대학교)에서 은퇴하고 지금은 제천에서 한국차문화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다. 만나기로 했다. 날을 잡았다.

 

친구와 만나기로 한 날은 보이스카우트 원로들과 점심 약속이 있는 날이었다. 원로들에게 식사를 마치고 한국차문화박물관을 운영하는 친구의 초대를 받았다면서 함께 가자고 했다. 원로 세 분을 모시고 시외버스를 탔다. 터미널에서 친구가 기다리고 있었다. 친구의 차를 타고 한국차문화박물관에 도착했다. 폐교를 사서 차문화박물관을 만들어서 운영중이었다.

 

친구의 안내로 박물관을 돌아보고 차를 대접받았다. 시내로 나와 저녁식사까지 대접 받았다. 친구는 서울로 가는 네 사람의 버스표까지 사주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무언가 하나라도 더 대접하고 싶어 하는 친구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다.

 

내가 한국에 머무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또 한 친구가 문자를 보냈다. 돌아가기 전에 꼭 만나고 싶다고. 친구는 불경 원전을 번역하여 한국 불교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친구였다. 만나기로 했다. 친구는 긴 수염에 더부룩한 머리를 하고 약속한 식당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식사대접을 받고 인사동으로 자리를 옮겨 쌍화탕을 한 잔 하고 헤어졌다. 만나기로 약속만 하고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친구 때문에 심란했던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졌다. 그냥 만나자고만 해서는 안 된다. 반드시 날을 잡아 만나야 한다.

 

고국에서 돌아온 다음날 내가 고국에 머무르는 동안 새크라멘토에 살고 있는 한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위암으로 십 수 년 전에 수술을 하고 경과가 좋다고 했었는데 지난 3월 새크라멘토에 모임이 있어 들렸다가 전화를 거니 거동이 불편하여 만나기 어렵다고 했었다. 그때 무리를 해서라도 친구를 찾아가 만났어야 했는데 이미 세상을 떠나버렸다. 또 한 친구의 명복을 빈다.

 

“만날 수 있을 때, 만나면서 살아야 한다.”

 

이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오렌지카운티 한인회를 만들고 초대회장을 지낸 박진방 전 회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보고 싶다고 했다. 오랜만에 만나 그동안의 근황을 나누며 세상일을 이야기 했다. 박회장은 근사한 점심을 대접해주었다. 떠나는 나를 보며 오래도록 손을 흔들며 서있었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