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운동을 시작하며
05/13/19  

벚꽃 구경 다니면서 꽃샘추위에 코트를 입네마네 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요즘 오후 기온이 섭씨 28도까지 올라가면서 어느새 초여름을 향해 가고 있다. 귀찮아서 미루고 있었지만 겨울옷들을 정리하고 여름옷들을 하나씩 꺼낼 때가 되었다. 옷장을 뒤지다보니 작년에도 잘 입었던 옷을 최근에는 한번도 입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이 바지 입으면 날씬해 보여서 좋았는데, 이 하얀색 셔츠는 아무 데나 잘 어울려서 즐겨 입었었는데’ 싶은 마음에 하나둘 꺼내서 걸쳐 보았다. 아뿔싸! 입는 순간 그동안 입지 않는 이유를 바로 알 수 있었다. 이 옷은 안 입는 게 아니고 못 입는 것이었다. 지난  1년간 나는 살이 쪄버린 것이다. 

 

“그렇게 먹으니 살이 찌지”라고 말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왠지 억울한 마음이 들 것 같다. 10년 전도 아니고 5년 전도 아니고 불과 1년 전에 입었던 옷이었다. 내가 잘 먹었던 것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늘 먹는 것만큼은 누구에게 뒤지지 않고 잘 먹어왔는데 어째서 최근 들어 더 몸이 망가진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역시 운동 부족과 노화밖에 떠올릴 수가 없다.  한참 운동에 재미들었을 당시에는 멀쩡했던 허리도 슬슬 적신호를 보내오고 있었다. 체력이 떨어지니 만성피로를 떨쳐버릴 수 없어 매사에 짜증이 심해졌다.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궁핍한 시절에도 없는 돈을 모아 운동을 시작했고 기적과 같은 운동 효과를 맛보고 운동을 찬양하는 칼럼까지 썼던 나이다. 그래, 다시 시작하자. 지금 투자하면 나중에 아파서 들어갈 치료 비용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다시 운동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솔직히 운동은 마음만 먹으면 혼자서 어디서든 얼마든지 시작할 수 있지만 지난 2년간 운동을 쉬어온터라 서너 달은 나를 끌고 가 줄 트레이너가 필요했다.

 

그래서 집 인근에 스포츠센터나 필라테스 스튜디오 이곳 저곳에 문의를 하고 체험 수업도 받아봤다. 대부분 첫 수업과 상담은 무료나 아주 저렴하게 제공해 주기 때문에 마다할 이유가 없다. 서너 곳을 방문에 트레이너를 만나 상담을 받아보니 마치 점쟁이를 만난 기분이었는데 "혹시 아이를 안을 때 주로 왼쪽으로 안으셨나요?" "혹시 족저근막염을 앓으셨나요?" "목과 어깨가 많이 안 좋으시죠?" 내 체형과 움직이는 몇 가지 동작만 보고 단 몇 분 만에 나를 훤히 꿰뚫어보는 듯한 발언들을 서슴지 않았다. 

 

모든 전문가들이 특히 나의 뒷 목 부위와 어깨에 집중했는데 뒷목에 근막 유착이 심해서 일상 생활이 불편할 정도로 통증이 심한 것이라고 했다. 이는 대체로 안 좋은 자세에서 비롯되는데 목을 앞으로 빼고 컴퓨터를 하는 자세나 여성의 경우에는 아이에게 모유 수유하는 자세가 대표적이라고 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매우 신빙성이 있는 접근이었다. 나는 네 명의 자녀들에게 모두 모유 수유를 했는데 모유 수유를 해 봤거나 하는 모습을 봤다면 알겠지만 절대 허리와 목을 꼿꼿이 핀 자세로는 할 수 없다. 등을 둥글게 말아 몸을 최대한 아이의 얼굴에 밀착하고 고개를 푹 숙이고 얼굴은 아이를 향해야 한다. 이런 자세로 하루에도 몇 번씩 (신생아 때는 열 번 이상) 1년간 수유를 하니 몸이 성할리 없었다. 전문가들의 소름 돋는 지적에 운동에 대한 절실함이 증폭되었다 (물론 다 의도된 것이고 내가 잘 낚여준 것이라는 것도 알지만).

 

나의 불룩하고 못생긴, 살짝만 잡아도 신음이 절로나는 아픈 뒷목은 네 아이를 낳고 키운 나만의 훈장일지도 모른다. 거친 파도가 범람하는 풍랑과도 같았던 역경의 육아 시절을 견디고 버텨온 나의 상처이고 흔적인 것이다. 하지만 올여름이 오기 전, 이 훈장과 과감히 작별하리라. 그리고 다시 작년에 입었던 옷을 입고야 말겠다.  더 늦기 전에 건강한 중년을 준비해야겠다. 운동 스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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