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야 1.5세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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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안에서
04/23/18  |  조회:114  

시도 때도 없이 차가 막히는데다가 주차 공간도 협소한 서울에서는 버스나 지하철같은 대중교통을 선택해서 이동하는 일이 많다오래간만에 고국에 와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니 예전보다 편리해지고 깨끗해진 시설에 감탄하고 또 실컷 사람 구경을 할 수 있어서 흥미롭다.

 

귀국 일주일 만에 나도 지하철을 타고 한 시간 이상 이동 할 일이 생겼다내가 지하철에 올라탄 지 얼마 안 가 운 좋게 좌석이 비었고 나는 두 아이와 셋이 나란히 편하게 앉아갈 수 있게되었다내가 가운데 앉고 양옆으로 큰애와 둘째를 앉히니 아이들이 몇 정거장 가지 않아 내팔에 기대 졸기 시작했다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띠를 맨 아기 엄마가 지하철에 올라탔고 내 바로 앞은 아니었지만 내 시선이 향하는 곳에 섰다초등학교 1학년쯤되는 큰 아이도함께였고 아기 엄마는 이미 꽤나 피곤한 표정으로 지쳐 보였다주변을 둘러보니 좌석에 앉은사람들 모두가 바빠 아무도 아기 엄마를 쳐다보는 이 없고 아무래도 누군가 일어설 조짐이 보이지 않아 나는 할 수 없이 자고 있던 아이들을 깨워 자리를 나란히 옮겨주고 내가 앉아 있던자리를 아기 엄마에게 양보했다아기 엄마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 금새 내가 양보한 자리에앉으면서 짧은 감사 인사도옅은 미소조차 보내주지 않았다괜히 내가 조금 머쓱해졌다.  

 

아기 엄마는 서너 정거장 지나 하차했고 나는 다시 그 자리에 앉았다그리고 또 얼마 안 가장애가 있으신 듯 걸음걸이는 물론 서 계시는 것조차 힘들어 보이는 아주머니가 그 아기 엄마가 섰던 자리에 섰다지하철이 덜컹거리자 아주머니가 위태롭게 휘청이신다역시 아무도 자리를 양보하지 않고 이번에도 내가 일어났다이번에도 고맙다는 말이나 미소는 돌아오지 않았다.

 

볼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지하철 안에서는 이십대 젊은 청년이 나이 지긋한 어르신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훈훈한 광경을 목격했다여기까지만으로는 분명 아름다운 광경인데 처음부터 자세히 살펴봤을 때는 조금 다르다일단 어르신이 청년 앞에 섰을 때 열심히 스마트폰에집중하고 있던 청년은 바로 이 노인을 인지하지 못 했다그러자 어르신은 다소 못마땅한 표정으로 청년을 쳐다보며 중간중간 헛기침을 하기 시작했다정적이 흐르던 지하철 속 사람들은 모두 무심해 보였으나 분명 이 두 사람에게 집중되고 있었다잠시 후 청년이 당황한 듯 일어났고 어르신은 이제야 알았느냐 하는 표정으로 그 자리에 앉았다이번엔 나도 내내 서 있었기 때문에 먼저 자리를 양보할 기회가 없었지만 이렇게 양보를 강요하는 노인에게는 왠지배려의 마음이 움직일 것 같지 않다.

 

언젠가 우리나라 지하철에서 70대 노인이 임산부를 폭행하는 사건이 있었는데 노인은 그때자리를 양보할 것을 요구하였고 임산부가 임신 사실을 알렸지만 믿지 않고 임부복을 걷어 올리기까지 했다는 것이 대략적인 스토리였다그래서 외관상 표시가 나지 않는 임산부들도 불편없이 배려를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임산부 배지를 발급하기도 하고 임산부 배려석을 따로 만들기도 했다.

 

버스나 지하철 등 대중교통에서 젊은 사람이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모습은 우리의 경로사상에서 비롯된 아름다운 전통이고 문화이다미국이나 서양에서는 흔히 볼 수 없고 당연시하는 문화가 아니다나 역시 미국에서 오래 생활한 영향을 받은 것일까자리 양보는 배려이고 자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배려는 배려일 뿐이고 자리 양보는 법률로 규제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노인을 공경하고 몸이 불편하고 약한 사람에 대한 배려가 바탕이되는 것이다이렇게 자발적인 자리 양보 후에는 양쪽 모두 기분이 좋아야 한다아니 최소한기분이 나빠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그런데 양보를 받는 대상이 불쾌하게 양보를 강요하고양보를 고마워할 줄도 모른다면 이는 결코 미덕이 될 수 없다.

 

나는 또한 노약자석의 정의를 두고 자리가 비어 있으면 앉을 수 있지만 약자를 위해 배려하는곳이라고 생각한다그리고 그 약자는 바로 식별이 가능한 노인이나 만삭의 임산부장애인뿐아니라 극심한 생리통에 시달리는 여고생허리 통증으로 고생하는 20대 청년며칠 야근으로 몸을 지탱하는것조차 힘든 40대 가장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살게 된 이상 나는 앞으로 수없이 많이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할 것이고 끊임 없이이런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부디 나의 자발적인 배려의 마음이 민망함으로 되돌아오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 나와 함께 동행하는 내 아이들이 양보의 미덕을 배우고 실천해 주길 소망한다양보를 하는 사람도양보를 받는 사람도이를 지켜보는 사람도 모두 미소지을 수 있는배려의 마음과 지하철 매너를 꼭 가르쳐주고 싶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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