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건강은 내가
06/03/19  

오랫동안 소식이 끊겼던 친구를 SNS 상에서 보았다. 미국 이민 초기 가깝게 지냈던 친구다. 대학을 졸업하는 아들과 찍은 가족사진에서 그를 발견했다. 갓난아이가 자라서 대학을 졸업하다니 대견하게 여겨졌다.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아이가 태어나던 때의 일이 스멀스멀 떠오르기 시작했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일이다.

 

아이를 낳고 퇴원했던 친구 부인이 출혈이 심해 다시 병원을 찾았다가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몇 년 간 이어졌던 소송 끝에 의료사고로 밝혀졌으나 이미 부인은 세상을 떠난 뒤였다. 그 후로 친구는 살던 곳에서 이사했고, 소식이 이어지지 않았다. 그때의 아이가 훌륭한 청년으로 잘 커서 대학을 졸업했다니, 감개무량하면서도 세상을 떠난 젊은 엄마의 의료사고가 떠올라 울적한 마음이 되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데 고교 동창생이 찾아왔다.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나누던 중에 올 초에 부인이 한국에서 수술을 받고 왔다고 했다. 미국에 의료보험이 없는가 물으니 보험이 있지만 의사를 믿을 수 없기 때문에 한국에 가서 수술을 받은 후 두어 달 회복하는 시간을 보내고 왔다고 말했다.

 

그리고 보니 해마다 부부가 한국에 가서 건강 검진을 하고 오는 친구도 있다. 그 친구는 북가주에 살고 있으며, 미국에 이민 오자마자 미군에서 복무를 했기에 좋은 의료보험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까지 가서 건강 검진을 받고 오는 것이 의아해서 물어본 적이 있다. 왜 그렇게 하냐고. 친구가 말했다. "병이 들기 전에 예방 차원도 있고, 조기 발견해서 치료하기 위함이 가장 큰 목적이다. 의료보험 적용을 받지 못함에도 한국에 가서 종합검진을 받는데 많은 돈이 들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한 번에 전신을 종합 검진하기 때문에 미국에서처럼 번거롭게 몇 번씩 왔다 갔다 하는 일이 없다." 게다가 미국의 의술이 발달해서 세계 최고라고는 하지만 실제 서민들을 치료하는 일선의 의사들을 믿지 못하겠다고도 했다.

 

그때는 친구의 말을 귓등으로 흘려들었다. 왜냐하면 병원에 갈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해마다 한국에 나가서 건강 검진을 받는 부부가 오히려 건강 검진을 받다가 병이 들지 않을까 걱정했다. 오히려 친구를 딱하게 여겼다.

 

정말 의아했다. 왜 미국의 의사를 믿을 수 없단 말인가? 필자의 이민 초기, 부모님은 미국과 한국을 자주 왕래하셨다. 20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나와 함께 사셨다. 젊은 시절의 아버지는 병원 근처에도 간 적이 없었지만 노년의 아버지는 병원 출입이 잦았다. 주로 필자가 아버지를 모시고 다녔다. 아버지는 70대 초반에 심장박동기를 달았고, 10년 뒤에 새로운 것으로 교체했다. 또 전립선 수술, 다리 수술, 백내장을 비롯해 이런 저런 수술을 많이 받으셨다. 앰뷸런스에 실려 간 적도 여러 번 있었다.

 

혼자 움직이는데 많은 불편함이 있어 운명하기 전 3년을 양로병원에서 생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의사에 대한 불평불만을 얘기한 적이 없다. 아버지가 원하기만 하면 한국의 원호병원에서 무료로 진료, 시술, 입원 등의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음에도 한국에 가서 의료 혜택을 받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전적으로 미국의 의료 시스템에 의존했으며 양로병원에서 병원으로 옮긴 후, 3일 만에 90년의 생을 마감했다.

 

필자도 집 가까이에 있는 아버지가 다니던 병원을 다니고 있으며, 주치의도 그 병원의 의사이고 모든 검사 및 진료를 받고 있다. 심지어 스스로 거동할 수 없을 때에는 아버지가 세상 떠나기 전에 3년간 머무르던 병원으로 보내 달라고 가족들에게 부탁까지 한 바 있다.

 

의료 사고는 비단 미국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리라. 또 일부러 사고를 내려는 의사도, 환자도 이 세상에는 없다. 의료 사고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먼저 철저한 진료와 검사를 진행해야 하고, 환자 스스로 자신의 몸에 생기는 이상을 철저하게 의사에게 피력해야 한다. 나타나는 징후나 검사 결과에 따른 의사의 소견이 완전히 이해되지 않는다면 완전하게 납득이 될 때까지 규명해야 한다. 그저 의사만 믿어서도 안 된다. 그렇다고 의사의 소견을 철저히 무시하라는 말은 아니다. 반드시 완벽하게 의사의 소견을 이해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의사의 소견에 이의가 있을 때에는 제 2, 제 3의 검진이 따라야 한다.

 

따라서 언어소통의 문제가 아니라면 진료나 치료에 있어서 한국이냐 미국이냐는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디에서건 귀찮아하지 않고 건강에 이상이 있다고 생각되면 의사를 찾아야 한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지나쳤다가는 그야말로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일이 생길 수 있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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