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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02/10/20  

 

4일이 입춘(立春)이었다. 4계절이 불분명한 LA 살면서 절기를 무엇하러 따지냐는 사람도 없지 않아 있는 듯하다. 그러나 LA에도 분명히 여름이 있고 가을과 겨울도 있으며 겨울이 가면 봄이 온다.

 

입춘 추위라 했던가. 아침, 저녁에는 물론 한낮에도 기온이 낮고, 쌀쌀한 바람까지 불어 제법 춥다. 사실 LA 사는 사람들은 봄이 오기를 크게 고대하지는 않는 편이다. 한겨울에도 따뜻한 날씨가 이어지다보니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덜하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봄날이 다가옴을 언급하기 불편한 까닭이 비단 날씨 때문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싶다.

 

고국에서 들려오는 소식이 한겨울 북풍이 몰아치듯 하고 있다. 정권을 잡기 위해 투쟁을 일삼고 있는 여당과 야당 등 정치세력들 간의 싸움은 그렇다 해도 대통령의 참모들, 대통령이 임명한 고위직 간부들 간의 싸움이 가관이다. 그것도 법을 집행하는 기관장들의 ‘칼 겨누기’다 보니 한 편의 드라마를 보고 있다는 착각이 들기도 한다. 왜 그렇게 임명해 놓고 좌불안석이었는가가 서서히 밝혀지고 있으니 4월 선거에서 국민들이 잘 심판하리라 믿는다.

 

흔히 하는 말로 ‘법대로 하자’. 대한민국은 엄연히 삼권분립이 보장된 민주주의 법치국가 아닌가. 법대로 하면 될 법한데 법을 믿지 못하니까 -과거의 정치인들은 법을 무시하고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았다- 민중들까지 나서서 촛불을 들고 태극기를 흔들며 서초동에서 광화문에서 자기들의 주장을 외쳐대고 있다.

 

마구 외쳐대고 거르지 않고 무분별하게 퍼 나르는 언론과 SNS 상의 카더라 통신에 눈과 귀를 갖다 대고 자기 성향이나 기호에 맞는 것만 받아들이다 보니 정치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조차 두 개의 집단으로 양분되어 버렸다. 친구끼리, 연인끼리, 심지어 부부지간, 부자지간에도 패가 갈려 으르렁대기에 이르렀다. 이런 싸움판에서 봄이 온들 봄이라 느껴지겠는가? 봄이 오고 안 오고를 느낄 겨를조차 없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나오는 탄식을 참을 수 없다

 

게다가 중국에서 발병한 몹쓸 병 때문에 온 세계가 초비상이다. 이 질병은 전 세계의 항공, 교통, 생산, 교역, 교육, 증시, 여행, 일반인들의 일상생활에 이르기까지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 방문금지, 국경폐쇄, 항공 운항 중단, 건강불안, 생산차질 등 그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질병으로 인해 각종 행사가 취소되고 학교들이 휴교하고, 극장과 식당들이 문을 닫고 있으며, 국가 간의 무역(수출입)이 제한되고 생산이 중단되었다.

 

심지어 이 병명을 놓고도 갑론을박하고 있다. ‘우한 폐렴’이든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든 그 어떤 이름으로 불리건 간에 지금 우리 인류에게 닥친 공포이며 엄혹한 현실이다. 신종이라 아직 치료제나 백신을 개발하지 못했고, 보균자들이 확진 판정을 받기 전에 언제 어디서 누구와 접촉했는지 철저하게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우리를 공포에 빠지게 만든다. 더욱이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식당에서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 중의 누군가가 보균자일지도 모른다는 점이 공포심을 더 키워주고 있다.

 

하룻밤만 자고 나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자들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오늘날 인류는 예방은 물론 질병에 대처할 의료 지식과 의술을 발전시켜 인간의 수명을 연장시켰으며, 삶의 질도 과거와 현격하게 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급속히 확산하고 있는 바이러스를 잡지 못하고 있으니 공포심까지 덩달아 확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급박하게 전개되는 상황 속에서 대처에 미흡하거나 아쉬운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이를 두고 또 양쪽으로 나뉘어 비난하며 싸우고 있다. 지금은 싸울 때가 아니다. 잘잘못은 사후에 엄정하게 가리기로 하자. 전문 의료인들의 견해를 존중해야 한다. 감당이 어려운 섣부른 인도주의도 문제지만 눈앞에 이익을 앞세워 혐오감을 보이며 차별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말을 아끼고 힘을 모아야 할 때다.

 

행정 입안자들이나 관계자들뿐만 아니라 우리 일반 국민 대중들도 신중해야 한다. 함부로 떠들고 나서지 말아야 한다. 정부 당국자들은 공항과 항구에서 철저히 검역하고 검사하여 보균자로 추정되거나 잠복기에 있다고 의심되는 사람들은 무조건 격리 조처함이 마땅하다. 국가든 개인이든 막연한 공포에 끌려 다니지 말고 신중하게 대처해야 한다. 백신이 개발되어 온 인류의 재앙을 헤쳐 나갈 것이라고 확신하는 바이다.

 

입 한 번 잘못 놀리면 영원히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살아야 했던, 총칼로 국민을 억압하던 군사정권 시절도 견디어 오지 않았던가. 도무지 끝이 없을 것 같았던 혹독한 겨울을 견디어 내고 민주주의의 봄을 만들어냈던 우리이기에 이 혹독한 계절도 잘 이겨내리라 굳게 믿는다. 무엇보다도 해마다 우리는 꽁꽁 얼어붙은 땅을 뚫고 새싹을 밀어내는 봄의 기적을 경험하고 있지 않은가. 동장군은 결국 온화한 봄볕에 밀려나고 말 것이다. 움츠려든 몸을 쫙 피고 마음 편하게 따뜻한 햇살을 즐기며 봄날을 걷고 싶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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