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5일, 같이 울고 같이 웃었던 18일간의 평창올림픽 여정이 끝났다.
미처 알지 못했고 특별히 관심을 두지 않았던 숨은 문제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도 했지만 무한한 가능성과 진정한 영웅들을 만날 수 있었던 평창올림픽의 여운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한다. 영미, 영미~~ 브룸을 박박 쓸고 비비는 행위보다 또렷하고 앙칼진 그 외침에서 느껴지는 열정과 진정성이 국민에게 전달되어 더 회자가 된 컬링 경기를 보며 올림픽 정신과 의미를 어렴풋이 느껴보기도 했다.
내가 살고 있는 나라에서 올림픽을 경험하는 것은 희소성이 있는 일이기에 우리 식구들도 좋은 기회라고생각하여 설 연휴를 이용해서 평창에 다녀왔다. 출발 전부터 미디어에서는 설날과 평창이 겹치며 KTX표는 진작에 매진되었고 설 연휴에 평창 쏠림 현상이 최대를 이룰거라는 아찔한 소식들을 쏟아내었다.
영동고속도로를 이용하면 서울에서 평창까지 2시간이면 도착하지만, 덕분에 서울에서 당일 치기로 올림픽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아져 고속도로는 차량으로 넘쳐났다. 그럴 줄 모른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우리 가족은 내 나라에서 열리는 특별한 올림픽 관람을 포기할 수 없었다.
무리한 일정 잡는데 탁월한 재능이 있는 남편 덕분에 이번 가족 여행도 빠듯한 일정으로 짜여졌다.설, 스키장, 평창을 1박 2일에 소화하기로 무리한 계획을 세우더니 아침 일찍 제사를 지내고 떡국 한그릇씩 비우고 어른들께 세배한 후 횡성으로 출발. 가는 길에 한국에서만 즐길 수 있는 휴게소에 들려 배불리 먹고 숙소에 도착해 쉴 틈도 없이 바로 썰매장으로. 두 시간 동안 쉴새 없이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며 썰매를 타고 아침 일찍 스키조, 목욕조로 나뉘어 바쁜 오전 시간을 보낸 후 그 유명한 횡성 한우로배를 든든히 채우고 평창으로 향했다. 평소 횡성에서 평창까지는 1시간 거리. 아무리 막혀도 2시간이면뒤집어 쓴다는 남편의 핑크빛 계획이 핏빛으로 물든 것은 내비게이션에 빨간 줄이 등장하면서부터였다. 추운 날씨에 연신 뿜어내는 자동차 히터의 열기에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고 아이들도 하나둘 멀미증상을 호소했다. 1시간 거리이다보니 휴게소도 많지 않아 몸이 보내는 화장실 신호는 공포가 아닐 수없었다. 미디어의 예상보다 더 심각한 트래픽 상황에 이젠 그만하련다를 사요나라~ 느낌으로 유턴하는 차량이 생기기 시작하고 아예 차를 버리고 걸어가는 사람(걸어가는게 훨씬 빠르니 ㅠㅠ)마저 보였다. 우리는 결국 한 시간이면 간다는 그 길, 막혀도 2시간이면 충분하다는 그 길 위에서 장장5시간을머물러 있어야만 했다 .저녁 6시 30분 경기이니 점심 먹고 일찌감치 출발해서 평창 주변 구경도하고 맛있는 것도 사 먹자던 우리의 계획은 말 그대로 계획에 불과했던 셈이다. 우리는 고개를 넘고 넘어 해가질 무렵 어느 황량한 언덕 밑에 주차한 후 네 명의 아이들 증 그나마 큰 애들은 손을 붙잡고, 작은 애들은품에 안고 경보하듯 걸어 두 번의 셔틀을 옮겨 탄 다음에야 살이 에는 매서운 칼바람이 반기는 경기장에입장할 수 있었다.
자리에 앉아 눈을 크게 뜨고 심호흡을 하고 나서야 평창이 눈에 들어왔다. 눈부신 조명이 설원에 반사돼 펼치는 빛의 잔치에 올림픽 경기장은 화려한 화장을 한 여인처럼 시선을 사로잡았다. 눈을 돌리니 보기에도 아찔한 스키 점프대가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우리의 여행 일정과 맞고 입장권이 저렴하다는 이유로 선택했던 크로스 컨트리 종목. 알록달록한 스키복을 입고 4년, 어쩌면 10년이 넘는 준비를해왔을 선수들이 열심히 눈길을 헤쳐 나갔다. 티비에서는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현장에서실황을 관람하니 흥미 진진했다. 선수들이 보여주는 크로스 컨트리는 박력, 열정, 힘참 그것이었다. 공연장을 찾아 관람하는 뮤지컬의 감동이 영상을 통해 보는 것과 다르 듯, 스포츠 현장에서 느껴지는 놀라움과 감동 역시 TV화면을 통해서는 느낄 수 없는 생생함이 있었다. 그 현장에서 선수들이 그려내는 인생의 작품을 보기 위해 그곳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흥분되고 신나는 경험이었다.
흰 눈을 헤치며 쭉쭉 전진해가는 선수들 속에 한국 선수들을 볼 수 없어 아쉬웠지만 미국 선수들과 동계 올림픽의 살아있는 전설 노르웨이 마리트바오젠 선수, 자국 선수들을 열심히 응원하는 관객들, 비록 순위권에 들지 못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선수들까지 모두 각자 뿜어내는 반짝거림이 올림픽의 기운을 더 끌어 올리고 있었다. 교통체증의 힘듬도 영하 15도의 칼바람도 우리의 열기를, 올림픽의 열기를 꺾을 순 없었다.
쉽지 많은 않은 여정이었지만 설레는 올림픽의 떨림과 그 열기는 우리 기억에 영원할 것이다.
나는, 우리는 그날 그곳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