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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인이 되자(루가 16: 1-13)
12/07/20  

오늘은 ‘뿌리’라는 드라마 얘기로 시작하겠습니다.

 

주인공의 한 사람은 '쿤타킨테'라고 아프리카 만딩고족의 용사의 아들이었는데, 어느 날 북을 만들 나무를 구하러 산에 들어갔다가 노예 사냥꾼들에 붙잡혀서 미국으로 팔려갑니다. 그리고는 갖은 학대와 노동과 비참한 생활에서 수없이 많은 고통을 겪지만 “나는 아프리카에서 자유로운 몸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을 한시도 잊지는 않습니다.

 

탈출을 기도하다가 발가락이 잘렸으며, 어떤 흑인들은 아프리카에서 미개한 생활을 하느니 보다는 노예일 망정 미국에서 문명 생활을 하는 것에 더 큰 기쁨과 위안을 갖기도 했지만 쿤타킨테는 인간에게는 먹는 것, 입는 것보다 더 높고 위대한 자유의 이상이 있음을 항상 잊지 않았으며, 하나밖에 없는 딸 '퀴즈'에게도 그 정신을 심어 줍니다.

 

퀴즈가 어느 날 갑자기 또 다른 농장의 노예로 팔려 갑니다. 그리고 거기서 퀴즈는 농장주인에게 순결을 잃게 되지만 “네가 내 몸을 뺏았지만 내 마음까지 빼앗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며, 아버지 쿤타킨테가 자기 자신에게 심어준 정신을 한시도 잊지 않습니다.

 

이 퀴즈가 한번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약속하게 됩니다. 진정으로 자기를 사랑해 주는 남성이었고 그리고 건강하며 믿음직한 사내였습니다. 그러나 일주일만의 교제 끝에 결혼을 포기합니다. 그 남자가 경제력도 있고 믿음직하며 훌륭하긴 하지만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완전히 묶여진 노예였기 때문입니다. 몸은 노예일 망정 마음은 자유로워야 하며, 그럴수록 이상과 꿈을 가져야 하는데, 그 사내는 그저 먹고 사는 것에만 매여 있는 구제불능의 노예였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는 더 길게 진행됩니다마는 제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인간은 아무리 비참한 생활 속에서도 마음은 노예로 묶여지지 않고 인간의 소중한 자유의 이상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그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어디서나 자유인이어야 합니다.

 

우리 주위에는 여러 형태의 노예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일의 노예가 있는가 하면 돈의 노예가 있고, 술의 노예가 있는가 하면 사치와 허영의 노예도 있습니다. 그리고 더 비참한 것은 자기가 노예라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진정한 자유를 모릅니다.

 

일은 고귀한 것이며 신성한 것입니다. 돈도 선한 것입니다. 술은 또 우리에게 기쁨을 주고 생기를 줍니다. 낚시나 골프도 마찬가집니다. 삶에 있어서 아주 소중한 것들입니다. 그것들이 정말 살맛나게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우리가 그것들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되면 불행합니다. 묶여져서는 안됩니다.

 

오늘 성서의 말씀은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재물은 소중한 것입니다. 선한 것이며 훌륭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재물을 정당하게 많이 소유하고 있다는 것은 복입니다. 어쩌면 복 중에서도 가장 큰 복입니다. 그러나 그 재물이 하느님 위에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절대로 그래서는 안됩니다.

 

현대인들은 핑계가 많고 이유나 변명이 많습니다. 그것이 바로 노예의 속성이고 그것이 바로 마귀의 끄나풀입니다. 어떤 형제는, 다른 것은 다 좋은데 자기 아내가 무엇을 원하고 있고 또 자기 자녀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를 모릅니다. 그저 돈만 벌어다 주면 다 되는 줄 압니다. 그리고 겨우 돈만 주고는 자기는 자기대로 놉니다. 노예라서 그럽니다.

 

사람은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재물을 소유하기 위해 땀흘려 수고한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요 숭고한 일입니다. 그러나 거기에만 묶여져 있다면 그는 슬픈 노예인 것입니다. '청지기'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주인의 재산을 관리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진정한 주인은 하느님이요 우리는 그 관리인입니다. 종이 아닙니다.

따라서 재물 앞에 결코 굽신거려서는 안됩니다.

 

여러분은 자유인입니다! 하느님의 소중한 자녀들입니다. 절대로 노예로 묶여져서는 안됩니다. 비록 굶는 한이 있어도 자유인답게, 자녀답게 떳떳하고 당당하게 살도록 합시다.

 

강길웅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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