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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격려하십시오(히10:19-25)
04/05/21  

오늘 본문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히10:32-35의 말씀으로 미루어 믿음을 가진 후 고난에 직면해 있었던 1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을 격려하기 위한 메시지였다고 생각됩니다. 고난의 종류는 달라도 1세기 이상으로 훨씬 복잡한 21세기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동일한 격려가 필요한 것이 사실입니다. 낙심할 이유 많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우리가 서로 격려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1. 규칙적 기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한 사람의 인격과 신앙을 세워주기 위해서는 규칙적인 만남의 기회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본문 25절에서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고 말합니다. 1세기의 그리스도인들보다 훨씬 더 복잡한 위기에 직면해 있는 우리에게는 더욱 규칙적인 성도의 모임이 필요합니다.
기독교는 처음부터 '공동체'로 출발했습니다. 신약교회는 '새 언약의 공동체'입니다. 그러면 여러분과 저는 얼마나 이 공동체의 모임을 소중히 여기고 있습니까? 공동체의 모임을 통해 규칙적인 격려를 받으며 살고 계시는지요? 17세기의 영국성공회 성직자 시인 존던이 리버플 항구에서 배를 타는데 교회식구들이 마중 나와 손을 흔드는 것을 조금은 번거롭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한 노인이 교회식구들에게 나아오더니 지폐 몇장을 내밀면서 "부탁이 있습니다. 배가 떠날 때 저를 위해 손을 흔들어 주실 수 있을까요?"하더랍니다. 그 날 그는 공동체를 떠나서 의미 있는 생존이 불가능한 인간의 실존을 깨달았다고 고백합니다. 그가 남긴 시의 한 줄은 이렇게 씌어집니다. "우리는 각각 떨어진 외로운 섬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대륙의 한 부분이다."

2. 격려의 생산적 내용을 숙지해야 합니다.
우리가 모여 우리의 모임을 생산적으로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생산적인 대화의 내용을 서로간에 숙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슨 대화를 나눌까요? 우리의 모임이 단순히 사람과의 만남만이 아닌 하나님과의 만남이 전제된 것이라면 오늘의 본문은 성도의 모임의 세 가지 중요한 관심의 주제를 서술합니다. 이 세 가지가 무엇일까요? 믿음, 소망, 사랑입니다. 믿음 없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소망 없이 미래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사랑 없는 모임은 의미 있는 모임으로 지속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일 때마다 믿음을, 소망을, 그리고 사랑을 격려하는 것을 숙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3. 성서적 모범을 학습해야 합니다.

교회는 되도록 좋은 목자를 세우기를 원합니다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경우 교회는 바꿀 수 있는 선택의 자유를 제공합니다. 순교적 각오로 한 목장을 고수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목장을 선택하십시오.

그러면 격려의 좋은 모범은 무엇입니까? 우선 복음서를 통해 예수님의 모범을 학습해 보십시오. 그는 열두 명의 제자들을 선택하신 후 그들과 규칙적으로 함께 하시며 하나님 나라의 진리를 나누셨습니다. 마지막 십자가를 앞두고 그는 제자들과 만찬을 함께 하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사랑의 본을 보이신 후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고 격려하시지 않았습니까! 제자들은 주님의 이런 격려를 체험하며 제자다운 제자로 성숙할 수 있었고 마침내 그들을 통해 세상이 변화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위대한 격려 자이셨습니다.

기독교 역사상 또 한 분의 위대한 격려자가 있었다면 바울 사도입니다. 그의 서신서는 격려의 메시지로 꽉 차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바울이 바울 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는 그의 인생에서 바나바를 만난 때문이었다고 믿습니다. 다소까지 가서 아직도 검증되지 않은 청년 바울을 믿어주고 '함께 일하자'고 격려한 사람도 바나바 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세계 선교의 지도력을 그에게 위임하고 조용히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져간 간 사람, 그는 이름처럼 '격려의 아들'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런 격려를 받았기에 또한 격려의 사람일 수 있었습니다. 격려 받아본 자가 격려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서로 격려하십시다!

김삼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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