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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는 행복의 지름길
09/13/21  

참회의 게송 불자들이 자주 외우는 천수경에는 다음과 같은 참회게(懺悔偈)가 있습니다. 이 참회게는 천수경만이 아니라, 많은 불교의식에서 공통적으로 널리 사용 되고 있는 게송입니다.

 

“지난 세상 제가 지은 모든 악업은(我昔所造諸惡業) 무시 이래 탐심 진심 치심을 좇아(皆由無始貪瞋癡) 몸과 말과 뜻으로 지은 것일세(從身口意之所生) 제가 이제 남김없이 참회합니다(一切我今皆懺悔).”

 

이 참회게에서는 무엇을 참회하라 하였습니까? ‘나 스스로가 지은 모든 악업을 참회하라’고 하였습니다.

 

그 악업은 언제부터 지은 것인가? 무시(無始), 시작을 알 수 없는 그 아득한 옛날부터 지어온 죄업들입니다. 현세에서 지은 업을 생각하면 전혀 까닭을 알 수 없는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스스로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흘러가는 일 또는 좌절감. 스스로가 지니고 있는 내적 외적인 단점들.

 

‘내가 이것밖에 되지 못하는가’하는 생각과 자기를 향한 불평불만, 부모, 형제, 배우자, 자식 등 주변의 사랑해야 할 사람을 향한 불평불만 등, 이해하지 못할 일과 의혹들이 지난 세상의 악업으로부터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곧 지난 세상과 지난 시간에 지은 악업 때문에 마음처럼 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죄업들 때문에 바라는 바대로 살지를 못하고 원하는 대로 살지를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이 죄업, 이 악업은 어떻게 하여 맺혀지게 되었는가? 바로 ‘나’ 속 에서 일어난 탐심(貪心), 진심(瞋心), 치심(癡心) 때문에 생겨났습니다. 탐하는 마음, 성내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 이 세 가지 마음은 ‘나’를 죽이는 독을 품고 있으므로 불교에서는 이를 삼독심(三毒心)이라고 합니다. ‘나’에게 가장 큰 적은 나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나를 죽이는 이 삼독심입니다. 우리는 탐심, 진심, 치심이라는 내 마음의 적부터 비워버려야 합니다. 바깥의 절대자에게 죄를 사해주고 복을 달라고 하기에 앞서, 욕심 내고 화를 내고 어리석음에 빠지는 ‘나’를 이겨내고 나의 마음을 가라앉혀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나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삼독심이 왜 일어나는지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악업의 근원이 되는 삼독심은 ‘나’라는 생각에서 비롯됩니다. 나에게 맞으면 취하고자 하는 탐심을 일으켜 내 것으로 만들고자 합니다. 나에게 맞지 않으면 시기하고 질투하고 성내는 진심을 일으켜 갖가지 좋지 않은 업을 짓습니다.

 

그런데 이 탐심과 진심의 밑바닥에서 이 둘을 움직이는 근원적인 작용을 하는 것은 치심(癡心)입니다. 치심의 ‘치’는 나를 올바로 알지 못하는 어리석음, 진리를 올바로 알지 못하는 어리석음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나와 진리가 둘이 아니요 나와 이 세계가 둘이 아님을 알지 못하여, ‘나’의 이기적인 굴레 속에 갇혀버린 마음이 치심입니다. 진리에 입각하거나 활짝 열린 마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나에 대한 사랑’에 빠져 사는 것이 치심입니다. 나 중심의 사랑, 나의 이기심이 바로 치심인 것입니다.

 

이러한 삼독심이 마음속에서만 일렁일 때는 그렇게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습니다. 하지만 탐심과 진심이 차츰 증폭되어 나쁜 짓을 하고자 하는 생각들이 구체화되면, 몸과 말과 뜻으로 십악업(十惡業)을 짓게 됩니다. 나아가 그 악업의 매듭이 우리를 결박하여 고통 속에서 꼼짝 못하게 만들어버리기 때문에 뜻대로 마음대로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이 과정을 거꾸로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십악업의 매듭부터 풀어야 하며, 십악업의 매듭을 풀기 위해서는 일체아금개 참회(一切我今皆懺悔)를 해야 합니다. 내가 알게 모르게 지었던 ‘모든 죄를 지금 모두 참회한다’는 것입니다.

 

참회에는 이유가 없습니다. 무조건 ‘잘못했다’고 참회해야 합니다. 그와 동시에 다시는 나쁜 짓을 하지 않겠다고 거듭거듭 맹세해야 합니다. 물론 무시 이래의 수많은 생애 동안 지어온 버릇을 얼마 안 되는 참회의 시간을 통하여 버리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반성하고 고쳐가고 맹세하다 보면 차츰 나쁜 습관을 없앨 수 있게 됩니다.

 

혜국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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