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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마태 21, 33-43 (가))
11/01/21  

꿩잡는다고 나간 사냥꾼이 산속을 헤매다가 부스럭 하는 소리를 듣고 꿩인줄 알고 방아쇠를 당겼다. 그런데 들려오는 소리는 사람의 비명소리였다. 이렇게 가끔 착각하여 사람 잡는 사냥꾼이 있다.

 

신앙인 중에도 착각 속에 사는 사람들이 있다. 가족과 이웃을 원수처럼 미워하면서도 미 사참례는 꼬박꼬박 하고, 이마에 십자가를 연신 긋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그러면서 “천국은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내가 천국엘 못 가면 누가 갈 수 있겠는가!”라고 허튼 소리를 외쳐댄다. 이들이야말로 착각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다. 성직자나 수도자도 때로는 봉사하러 왔다는 것을 잊은 채 봉사 받으러 왔다는 착각 속에 살아갈 때가 있을 것이다.

 

인간이 착각하는 것 중 근본적인 것은 ’나는 죽지 않는다’는 것이다. 관을 잡고 울면서도 죽음은 나의 것이 아니라는 착각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그 외에도 물질은 나를 영원한 삶으로 인도할 수 있다는 착각과 권력이 영원하리라는 착각 속에 사는 이들이 있다.

 

포도원 주인은 상당히 넓은 포도원을 가지고 있었나 보다. 그래서 혼자 직접 관리하지 못하고 나누어서 소작인들에게 도지를 주었다. 추수때가 되면 도조를 받아오라고 일꾼들을 보냈다.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소작인들이 착각에 빠져 한푼도 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세를 받으러 간 종들을 하나는 때려주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로 쳐죽였다. 주인이 그 소식을 듣고 다시 종들을 보냈다.

 

아마도 엄하게 경고하라고 보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에게도 똑같은 짓을 했다. 마지막으로 아들을 보냈다. ‘내 아들이야 차마 어떻게 하지 못하겠지!’하며 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아들마저 능지처참하였다. 당시 유대법으로는 포도원 주인이 아들 없이 죽으면 그 포도원은 소작인들에게 돌아간다고 돼 있었다. 그들은 그것을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너무나도 큰 착각에 빠져있었던 것이다.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 아버지는 부르르 떨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가서 소작인들을 능지처참하였다. 착각의 결론은 비참한 죽음으로 돌아왔다. 이 비유는 유대인들 일부를 겨냥했다. 그들은 뽑힌 백성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하느님의 예언자들을 수없이 죽였고 급기야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을 죽였다. 그들의 말로는 뻔하였다.

 

이젠 도조를 잘내는 사람들에게 소작이 돌아갔다. 그들은 누구인가? 이 시대의 크리스천들이다. 그들이 새로운 소작인들로 뽑힌 것이다.

 

우리는 사람들 중에서 특별히 뽑혀 많은 것을 받았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잊기 쉬운 것이 있다. 우리는 공기도, 물과 태양도 다 받았음을 잊어버리고 있다. 우리는 건강도 집도 재물도 가족도 다 받았다. 그 뿐인가! 우리는 아름다운 산하를 받았다. 이 모든 것은 다 하느님의 것이다. 우리더러 마음대로 누리며 살라고 주신 선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도조를 내야한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도조로 원하시는가? 그분은 우리에게 시간을 원하신다. 또 가난한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사랑의 선물인 재물도 드릴 수 있어야 한다.

 

착각 속에서 헤매다가 돌아선 사람은 바오로다. 그는 크리스천들을 박해하는데 앞장섰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다음부터 완전히 달라졌다. 착각에서 깨어났다.

신앙인은 이렇게 주님을 만나고 착각에서 깨어나야 한다. 주님을 만난다는 것은 선물이다. 은총이다. 주님께 기도해야 한다.

 

우린 신앙인으로서 무엇을 착각하고 있지나 않은지 잘 살펴야 할 것이다. 가난한 자, 병든 자, 소외된 자들이 넘쳐나는데 나만의 울타리를 굳게 치고 그 안에서 장구치고 북을 치며 나 홀로 이대로 마냥 기쁘게만 하소서! 라고 노래하는 것이 복된 삶이라고 착각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아야 한다.

 

최기산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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