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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와 행복(마태오 10,37-42)
04/10/23  

“고통은 바로 행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이다.”

어쩌다 초대 교회사에서 십자가에 처형된 순교자들의 사화를 읽을 때는 정신이 아찔해지고 가슴이 조여 옵니다. 십자가형이 그렇게도 가혹하고 비참했던가를 지금도 피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제국에서 시작되었다는 이 십자가 형벌은 아마도 인류 역사상 가장 잔인한 형벌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래서 로마인은 물론 이스라엘 사람들까지 ‘십자가’라는 말만 들어도 치를 떨며 무서워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십자가’란 곧 피와 땀과 고통을 대신하는 말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십자가는 바로 고통이기에 고통을 원하지 않는 우리로서는 십자가는 달갑지 않으며, 될 수 있는 대로 피하고 싶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십자가를 외면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예수님은 고통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당신의 뒤를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사람이 될 자격이 없다.’ 예수님께서 이처럼 강조하시는 이유는 단 한 가지뿐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참된 제자가 될 수 있도록, 즉 우리가 영원히 행복할 수 있도록 하시려는데 있습니다. 십자가의 고통 없이는 결코 행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예수님의 말씀을 불란서의 유명한 문학가 뽈끄로델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만일 십자가의 고통을 원하지 않는다면 행복도 원하지 말라’ 참으로 고통 즉 십자가만이 하느님의 참 사랑을 깨달을 수 있고 자신의 적나라한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어 자신의 나약함과 부족함을 깨닫게 되며, 겸손한 마음으로 하느님 앞에 무릎을 꿇고 그분께 매달리게 하는 것입니다.

이때에야 우리는 비로소 참된 기쁨을 맛볼 수 있으며 영원한 행복으로 한 희망 속에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고통의 십자가는 결코 하느님의 저주가 아니라 당신을 부르고 계시는 신비의 손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예수님의 말씀도 우리를 고통 중에 버려 두시려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통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고 우리에게 영원한 행복을 주시려는데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결코 실망할 수 없습니다. 또한 하느님은 고통을 주시되 극복할 수 없는 고통을 주시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예수님과 같이 십자가를 지고 갈 충분한 힘과 용기가 주어졌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를 한없이 사랑하시는 예수님은 우리가 십자가를 포기할까봐 몸소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타의 좁은 가시밭길을 오르심으로써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얼마나 우리가 행복하기를 바라셨으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으면 이렇게까지 하셨겠습니까!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 지극한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십자가를 외면하고 원망하며 저주하면서까지 살아갑니다. 이런 사람은 은혜에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며 자기의 죄를 부끄러워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결국 종말에 행복하기보다는 틀림없이 멸망할 비운을 겪게 될 것입니다. 만일 우리 중에도 십자가를 외면한 채 고통을 피하고 오히려 쾌락만을 찾아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 즉시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무릎 꿇어 용서 청해야 할 것입니다. 용기를 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우러러보고 자비를 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지고 따른다는 것은 매일 매일 우리에게 닥쳐오는 어려움들을 예수님을 생각하며 기쁜 마음으로 극복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불쾌한 나날의 유혹과 괴로움을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용기와 희망을 갖고 끝까지 달려가는, 곧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것입니다. 고통을 피하려고 몸부림치면 칠수록 더욱 고통은 심해지며, 십자가는 억지로 지고 갈수록 더욱 무거워 지는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와 같이 만남의 고통을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기쁜 마음으로 자원하여 질 때 참된 예수님의 제자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최형락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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