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사람은 그 목수가 아닌가? (마르 6,1-6 (나))
06/12/23  

사람은 누구나 고향을 그리워합니다. 자기가 태어나고 자라났으며, 어린 시절 친구들과 어울려 소꿉장난하던 고향, 보고 싶은 부모 형제 친척 친구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고향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도 전도 활동을 시작하신 후 여러 곳을 다니시며 복음을 선포하시다가 잠시 짬을 내어 제자들과 함께 고향 나자렛 마을을 방문하셨습니다. 모처럼 고향을 찾으신 예수님의 마음도 아마 감회가 깊으셨을 것입니다. 때마침 안식일이 되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예배에 참석하셨고, 그 기회에 고향사람들에게 하느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셨습니다. 그분의 말씀은 지혜로 가득 차 있었고 권위가 있었으며, 능력으로 충만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분의 말씀에 탄복하였고 그분의 능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들 중에는 예수님의 명성이 자자한 것을 시기한 나머지 그분을 배척한 사람들도 있었고, 그분이 자기네들과 함께 자란 평범한 사람이라는 사실 때문에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훌륭한 교훈과 놀라운 능력에 감동하면서도 단지 그분이 요셉의 아들로서 목수라는 점, 그분의 어머니와 친척들이 자기네들과 같은 마을에서 살고 있다는 점을 내세워 예수님을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인간적인 신분 때문에 그분을 거부하였고 그분의 참모습을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고향사람들이 보여준 탄복과 배척의 연유를 좀더 자세히 생각해 봅시다. 그 당시 주님은 고향을 떠나 주로 다른 지방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파하셨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호응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가문이나 성분을 따지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그분이 하신 진리의 말씀과 초자연적인 기적을 순수하게 받아들였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님을 위대한 메시아로 확신하게 되었고 그분을 따라다녔습니다. 이러한 소문은 삽시간에 온 유다와 갈릴래아 지방에 두루 퍼졌고 예수님의 고향에도 전달되었습니다.

고향사람들은 금의환향하시는 예수님을 처음에는 환영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분을 모시고 그분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였습니다. 과연 소문대로 그분의 말씀은 너무도 당당하고 권위가 있었으며 그분의 능력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의 출신과 직업과 학벌을 의식하지 시작하였습니다. 뻔히 아는 것이지만 그분은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목수에 지나지 않았고 그분의 친척들 역시 자기네들에 비해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지혜가 출중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분의 성분을 앞세워 그분의 말씀을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구약시대의 예를 들어 “어디서나 존경을 받는 예언자라도 자기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을 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심으로써 그들의 완고함을 꾸짖으셨습니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평범한 사람들을 내세워 당신의 뜻을 전달하시고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신 과거의 역사를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30년 동안 함께 사신 예수님의 참모습을 알아보지 못하였고 그분이 베푸시려던 은총의 선물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대변인을 선정하실 때 인간적인 기준이나 세속적인 지위를 중시하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오로지 당신의 뜻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성실하게 따르려는 사람의 마음을 보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개가 인간적인 편견으로 이웃을 판단합니다. 사람 됨됨이를 보지 않고 피상적인 용모나 드러난 성분만을 따집니다. 때로는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이 인간적으로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라고 말씀 자체를 배척합니다. 하지만 세속적인 편견을 버리지 않고서는 우리가 결코 주님을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주인이신 아버지, 안다는 사람들과 똑똑하다는 사람들에게는 이 모든 것을 감추시고 오히려 철부지 어린아이들에게 나타내 보이시니 감사합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이것이 아버지께서 원하신 뜻이었습니다.”(마태 11,25-26) 바오로 역시 비슷한 말을 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지혜있다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어리석은 사람들을 택하셨으며 강하다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약한 사람들을 택하셨습니다.”(1고린 1,27-28)

우리도 무엇을 좀 안다고 자부하거나 자기 생각대로 신앙을 저울질하지 맙시다. 그렇다고 성경이나 교리 공부를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교리 지식이나 교회 상식을 넓히는 것은 신앙을 키우기 위하여 매우 유익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순진하게 받아들이고 진실하게 믿고 착실하게 실천하는 사람이 됩시다. 그리고 사람을 대할 때에도 그 사람의 출신이나 신분이나 외모만을 앞세워 진실을 외면하는 일이 없도록 합시다.

성민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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