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 순간부터 좋은 씨로 살자(마태 13,24-43 (가))
07/24/23  

주인이 밭을 다듬고 좋은 씨를 뿌렸는데 밤중에 원수가 와서 가라지 씨를 뿌리고 갔다 합니다. 처음 싹이 나고 잎이 날 때 누가 알겠습니까? 그러나 그 어린순이 점점 자라면서 구별이 돼 갑니다. 좋은 씨와 가라지도 뿌리를 뻗고 얽히어서 서로 생존경쟁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자기 전체를 내걸고 싸우지 않으면 결국 진다는 것보다는 죽음을 가져오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경지에서 지게 된다면 씨의 결실인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경우엔 아무 쓸모가 없고 생명을 주는 양식이 될 수 없기 때문에 밖에 버리거나 불태워 버리거나 할 것입니다.

그러면 가라지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 의미란 바로 우리를 암암리에 해치는 독소입니다. 그러한 독소를 제거하지 않을 경우엔 중독이 되어 인간의 생명을 조금씩 끊는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독소가 유혹을 통해서, 마술이나 덫을 통해서 우리의 오관을 어지럽혀 무질서하게 만들고 마음을 산란하게 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무엇을 하거나 이것이 옳은 일이냐 그른 일이냐를 진정한 자세에서 잘 분별하여 행해야 할 것입니다. 분명히 ‘그것은 나쁜 일인데······ 인간이란 본래 약한 의지를 가지고 있으니깐 이런 일 정도는 괜찮겠지. 하느님도 별것 아닌 것으로 눈감아 주실 거야’라는 식으로 자기 합리화 시켜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왜 세상 안에 악과 선이 있습니까? 또 착한 사람들이 왜 고통을 받고 있습니까? 자유를 주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하기 위해선 피와 땀으로 노력한 대가로 지불 받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선 미래의 추수까지 말씀하십니다. 추수 때 영원한 불 속에 내던져질 것이냐 아니면 간선된 자로 남을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오늘 이 순간이 중요한 것이란 점입니다. 매순간 매순간이 한 인간의 역사의 좌표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것이냐 안 받아들일 것이냐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러한 문제는 단순히 ‘그 말씀 지당하군’하면서도 나와는 아무 관련 없는 것으로 해서는 안되다는 점입니다. 하느님이 하신 말씀은 내 행동의 좌표가 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리는 죽음을 물리치고 승리하시는 예수님과 함께 구원을 받는다는 확신과 희망을 가지고 바로 이 순간 가라지가 무성한 이 어려운 시기를 극복해 나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허위와 교만, 착취라는 굴레로서의 경제적인 살인, 악법이 성행하는 이 시기에 많은 사람들이 공포와 삶의 좌절을 안고 있다는 점을 귀로 눈으로 직접 간접으로 보셨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 사시는 교형자매 여러분! 삶의 희망을 이들에게 안겨주시지 않겠습니까? 사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 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고 박해를 받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린이와 같이 순진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나라를 맞아들여야 하기 때문입니다.(루가 18,17) 그 손가락질하는 사람, 자기 안에서 비추어 볼 때 바로 내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서 악과 타협을 잘 할 뿐 아니라 남이 잘하는 모습을 보고 배가 아파서 파괴하려는 가라지와 같은 마음, 남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곳에서 나올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라지와 같은 허위와 교만, 질투, 사기, 이간질의 씨앗이 내 마음속에 자라나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좋은 씨앗이 자라도록 하나씩 하나씩 자기 잘못을 고쳐나가면서 힘써야 하겠습니다. 또한 바로 내 이웃을 통해 이웃 안에 계시는 예수님을 발견하도록 노력할 뿐 아니라 서로 도와가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해도 힘이 모자라게 될 경우엔 성령에 매일매일 의탁하십시오. 성령께서 잘 되도록 이끄신다고 하셨습니다.(로마 8,26)

염수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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