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에 눈 멀면 복도 재앙 된다
09/11/23  

복이란 것은 무엇일까요? 불자들은 복을 어떻게 보아야 하고 복을 쌓는 것, 복스럽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오늘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아흔 아홉석 갖고도 불행한 부자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부터 다섯 가지 복, 즉 오복을 최고의 복으로 여겼습니다. 그 가운데 제일 큰 복은 수명, 오래 사는 일이었습니다. 오래 오래 건강하게 살아 출세하고 부자가 되어서 자식을 많이 낳다가 편히 죽는 것이 전통의 복이었습니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그것을 한시적인 복이라고 보았습니다. 우리의 욕심 가운데 즐거운 것과 좋은 것에 해당하는 ‘오욕락’이라고 본 것입니다.

오욕락은 재욕, 성욕, 음식욕, 명예욕, 수면욕의 다섯 가지 욕망을 뜻합니다. 먹고 자는 것이 인간이 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이것도 지나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먹는 것도 맛있는 것만 찾으면 식탐이 됩니다. 잠도 문제입니다. 공부하는데 제일 큰 장애가 잠이지만 반대로 잠을 못 자는 것도 큰 병입니다. 이처럼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들이라도 지나치게 넘치면 불행, 재앙이 됩니다. 모든 것이 적당히 맞아야 합니다.

많이 가졌다는 사람들이 없는 사람들보다 더 힘들어 합니다. 아흔 아홉 섬 가진 사람이 한 섬 채워 백 섬 만들고 싶어 하고 백 섬 가진 사람은 천섬을 갖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복이라는 것은 이처럼 자기 주관적인 것입니다. 복이 없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살아가는 것이 괴롭겠지만 심기일전하여 삶을 다른 관점에서 보면 그 괴로움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거기에 집착하고 통탄하며 함몰돼 있으면 그 괴로움이 더 오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복이라는 것은 고정된 실체가 아닙니다. 즉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대지도론’의 말씀을 보면 ‘불도를 성취하려면 무릇 실천해야 할 것이 두 가지이니 첫째는 복덕이고 둘째는 지혜다’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곧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지혜, 선정의 육바라밀을 뜻하는 것입니다.
부처란 무엇인가? 사실 그 내용을 보면 복덕과 지혜입니다. 이것은 동전의 양면이자 하나입니다. 보시, 지계, 인욕은 복덕의 문이고 참선하고 독경하며 정진하는 것은 지혜의 문입니다. 여기 앉아서 법문을 듣는 것은 지혜를 진작시키는 일이지만 동시에 이 시간에 보시를 하고 자리를 양보하고 다른 사람을 안내하고 남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모두 복을 짓는 행위입니다.

그러면 복을 어떻게 지어야 하는 가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복은 평상시에 지어야 합니다. 특히 여러 사람에게 이익이 되게 지어야 합니다. 나와 남을 구분하지 말고 내가 지은 만큼 받는다는 생각으로 복을 지어야 합니다.
복을 오래 받으려면 복도 아껴야 합니다. 지금 형편이 좋고 살기가 편하다고 복을 함부로 막 쓰면 아무리 많은 복이라도 바닥이 드러나고 맙니다.

불교에서는 육도윤회를 말합니다. 그 가운데서 천상에 태어난 사람은 이전 생에 복을 많이 지어 복 저금을 많이 해 놓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천상에 태어나서 그것을 계속 사용하면 마치 마일리지처럼 복이 바닥이 나기도 합니다. 그러니 아껴 써야 합니다.
특히 복을 쓰되 나나 내 가족만을 위해 쓰지 말고 널리 여러 사람에게 이익이 돌아가도록 써야합니다. 그런데 쉽지가 않습니다. 그러니 복을 지을 만한 곳을 찾아다녀야 하고 꾸준히 널리 지어야 합니다. 즉 봉사를 말합니다. 우리가 자기를 낮추고 상대를 위해 하는 모든 행동이 복입니다. 또 내가 입은 은혜를 갚는 것도 복을 짓는 일입니다. 이처럼 복도 잘 간수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복은 인생 만사에 쓰이지 않는 데가 없고 복으로 하지 못할 바가 없습니다. 적게는 한낱 미물 초목이 성불하는 것도 지어놓은 복이 없고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복은 지어만 놓으면 언제 어디서나 여의보주와 같이 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는 스스로는 물론이고 우리 주변의 이웃들과 나아가 모든 중생들을 위해 늘 큰 복을 짓는 불자가 되길 바랍니다.

법타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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