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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보다 사랑을(루가 6,39-45 (다))
02/19/24  

얼마 전 여동생과 함께 서울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겨울 밤 9시는 꽤나 어두웠고, 매섭도록 추운 날씨였습니다. 동생과 저는 볼일이 달랐기 때문에 동생을 먼저 보내기 위해 저는 택시를 잡았습니다. 문을 열고 운전사의 얼굴을 본 순간 저는 시간이 늦어지더라도 목적지까지 동생을 데려다 주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운전사의 얼굴이 시커멓고 흉터가 있는 것이 아주 험상궂고 무서워 보였기 때문입니다.
목적지에 도착해 요금을 지불하고 택시 문을 열고 내리려 할 때 운전사의 큰 손이 저의 팔을 덥석 잡았습니다. 저는 섬뜩하여 운전사를 쳐다보았습니다. “신부님, 이 돈은 받지 않겠습니다. 신부님을 모실 수 있어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저의 본명은 마르코입니다.”
저는 그분의 겉모양만을 보고 나쁜 사람으로 성급한 판단을 했으나 그분은 오히려 저에게 친절을 베풀어 저를 부끄럽게 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남을 판단하지 마라고 엄히 명하시면서 남의 눈에 든 티를 보고 호들갑을 떨면서 욕하고 자기 눈은 깨끗한 양 여기지만, 실상 자기 앞은 하나도 가리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켜 위선자라고 꾸중하십니다. 오늘은 주님의 이 말씀으로 우리 자신을 반성해 보기로 합시다.

우리 모든 인간에게는 다른 사람의 사정은 개의치 않고 행동하면서도 다른 사람을 간섭하려 드는 본성이 있습니다. 어떤 경우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되었을 때 우리는 쉽게 그 사람의 생각을 무시해 버리거나 아니면 나와 똑 같은 생각을 가지도록 강요할 때가 허다합니다.

상대방의 인격에는 상관없이 “주는 것 없이 밉다”는 식으로 ‘저 사람은 얼굴이 시커멓게 인상이 깊지 못하다’느니 하며 상대방의 용모, 행동거지, 생각 등 모든 것을 노출시켜 놓고 흠을 잡거나 비판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어떤 때는 아주 재미있기도 하고 주위의 사람들이 자기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과는 다른, 더 훌륭한 사람으로 인식해 주겠거니 하는 우월감조차 가지게 합니다.

우리는 일상 생활을 하면서 두 개의 커다란 저울을 가지고 사는 듯합니다. 자기의 잘못이나 죄를 계산하는 저울과 남의 잘못을 재는 저울이 그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자기에게 이로운 저울만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기주의이며 죄의 근본입니다. 자기 중심으로 사물을 생각하는 것은 다른 사람은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과 연결되기 쉬우며 이는 곧 죄의 온상이 되고 맙니다.

여러분 이웃의 잘못은 나 역시 범할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리 모두는 나약한 인간이므로 이웃과 같은 처지에 있었더라면 더 나쁜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하느님 앞에서 우리 인간은 누구 하나 예외 없이 모두가 죄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매일 그분께 죄인임을 고백하여 용서를 받아 하느님의 자비로운 처우를 받고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 같은 죄인으로서 어떻게 남을 판단할 수 있고 더구나 악인으로 낙인 찍어 남의 구원을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모두가 용서를 필요로 하는 사람임을 알게 될 때, 남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게 될 것이며 이웃과 나 자신의 용서를 위해 애덕의 행위를 하느님과 이웃에 바치게 될 것입니다. 이런 겸손의 정신은, 잘못이 있는 형제들을 이해해 주게 되고, 그 잘못을 캐지 않고 언제나 관대하게 대해 주며, 그 형제가 하느님의 뜻에 의합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남보다 훌륭한 사람이라고 혹은 착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남을 판단한다면, 그는 예수님께서 꾸짖으시는 위선자일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주님의 가르치심대로 판단은 그분께 맡겨 드리고 형제를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김종헌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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