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마태오 10, 37-42 (가))
03/11/24  

오늘 복음은 자기 십자가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우리의 모든 것을 버린 후에 각자의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의 십자가가 상징하는 것은 지금 우리들이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십자가가 곧 구원의 상징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 시대의 십자가는 고통과 허무, 절망과 실패의 상징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유다민족의 독립을 위하여 투쟁하던 많은 유다인들이 로마군에 붙잡혀 처참하게 처형당하던 것이 바로 십자가였기 때문입니다. 유다인들은 십자가를 통해 자신들의 독립의지가 무참히 짓밟히고 자신들의 끈질긴 노력들이 수포와 좌절로 끝나버리는 것을 수 없이 보아왔던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십자가는 무엇을 뜻하는 것이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우리들 각자의 자기 십자가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그것을 알기 위해 우리 주변을 한 번 살펴봅시다. 우리들 중의 누구는 불구자로 태어났거나 아니면 질병과 사고들로 인해 북구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반면에 우리들 중의 대부분은 건강한 몸으로 태어났으며, 또 그 다지 애를 쓰지 않고도 건강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또 누구는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잘살아 보기 위해 죽어라고 애를 쓰지만 별로 나아질 것 같지 않은 암담한 미래를 보고 살아갑니다. 그 반면에 누구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평생 동안 경제적인 어려움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불행한 처지에 있는 사람은 자신의 신세를 비관하여 하느님께 그 책임을 돌이며 원망하기도 하고 또 반대로 유복한 처지에 있는 사람은 하느님 없이도 세상은 잘 돌아가고 있다는 교만한 마음을 갖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은 자기 중심적인 삶의 태도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마침내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곳은 허무와 절망감입니다. 이러한 우리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자기 십자가라는 말씀을 통하여 경종을 울리시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시는 말씀은 곧 우리 삶의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안일하거나 자기 중심적인 생활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내 사람이 될 자격이 없다고 하신 말씀은 바로 가족이라는 표현의 혈연관계가 의미하는 자기 중심적인 삶의 태도에서 벗어나 예수님 중신이라는 삶의 태도로 변화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 중심의 삶의 태도는 곧 이웃에 대한 봉사의 삶입니다. 또 달리 말하면 이웃을 위하여 나의 아집과 그릇된 소유욕을 포기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중심적인 삶의 태도를 벗어 버린다는 것은 커다란 고통이 뒤따릅니다. 자기 소유물을, 내가 가진 것을 남에게 아낌없이 베푼다는 것도 그다지 쉽지 않습니다.
또 다른 사람을 위해 나와는 전혀 무관한 일을 한다는 것은 더욱 힘이 듭니다. 그런데도 그것이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시는 우리의 십자가인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지고 가야할 자기 십자가인 것입니다. 우리들의 십자가는 각자의 무게도 다를 뿐 아니라 때로는 엄청난 고통이 뒤따를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벗어 팽개쳐 버리고 쉽게 사는 방법을 택하고 싶은 강한 충동을 만나게도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봅시다. 우리들 각자에게 맡겨진 자기 십자가, 자기 중심적인 생활에서 탈피하여 이웃에 대한 봉사의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 나설 때 예수님께서는 무한한 평화와 사랑으로 보답해 주실 것입니다.

김대영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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