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있기에 삶이 있는 것입니다
03/18/24  

다른 종교에서는 영생(永生)을 말하지만 불교에서는 '다시 태어나지 않는 것(不生)'을 설파합니다. 여기에는 삶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가 있습니다.
산다는 것이 과연 즐겁기만 할 수 있을까요? 계속해서 즐겁게만 산다는 것이 가능할까요? 아무리 재미있고 즐거운 일이라도 한때가 지나가면 그만인 것은 아닐까요? 변화가 없이 영원히 산다는 것이 과연 행복을 담보해줄까요? 물론 즐거움으로만 가득 찬 세상에서 영원히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살 수 있다면 행복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즐거움이란 괴로움의 상대적 개념입니다. 즐거움만 있는 곳에서는 즐거움이라는 단어조차 없겠지요. 괴로움이 있기에 즐거움이 더 가치 있어 보이는 것입니다. 삶 또한 죽음의 상대적 개념입니다. 죽음이 있기에 오히려 삶이 가치 있게 여겨지고 생동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삶만 있다면 삶을 생생하게 만끽할 수가 있을까요?

옛날 어느 사나이의 집에 아름답고 기품 있어 보이는 한 여인이 찾아왔습니다. "그대는 누구입니까?" "저는 공덕녀(功德女)라 합니다." "무엇을 하는 분인지요?" "소녀에게는 묘한 재주가 있어서, 저를 보는 사람은 모두 기분이 저절로 좋아집니다. 또한 저와 함께 있으면 재물이 모이고 수명이 늘어나며 운수대통하게 되지요." 그러면서 함께 살기를 요청했습니다. 사나이는 흔쾌히 수락했지요. 그런데 조금 후, 또 다른 여인이 찾아왔습니다. 그 연인은 앞의 여인과는 정반대로 추하기가 이를 데 없었습니다. "그대는 누구요?" '저는 흑암녀(黑暗女)입니다."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저 또한 묘한 재주가 있어 저를 보는 사람은 모두 기분이 나빠지게 됩니다. 또한 저와 함께 있으면 부유한 자가 가난해지고 수명이 줄어들며, 하는 일마다 재수가 없어지지요." 사나이가 기겁을 하여 쫓아내려하자, 그녀가 말했 습니다. "앞서 온 공덕녀는 저의 언니입니다. 저희 둘은 무슨 일이 있어도 같이 다녀야 하기에, 저를 쫓으려면 언니도 함께 내쫓아야 합니다.”

죽음은 우리가 경험해 보지 못한 세계이기에, 늘 우리에게 두려움으로 다가옵니다. 하지만 모든 존재는 변화합니다. 일단 존재한다면 그 무엇이든 변화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존재라는 말 자체가 변화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사실 변화가 없다면 존재를 느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변화가 있으므로 존재가 있고, 존재가 있으므로 시간이 있습니다. 존재는 곧 시간이며, 변화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테어난다는 것은, 상대적인 모든 것을 수반함을 의미합니다. 존재는 상대적인 개념 속에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고통 끝에는 즐거움이 있으며, 즐거움이 다하면 고통이 오는 것입니다. 천당이 있으면 지옥이 있고, 복락이 있으면 재앙이 있습니다. 선이 있는 곳에서 악은 더욱 드러나며, 악이 있는 곳에서 선은 더욱 선명해지는 법입니다. 이와 같은 상대적인 고통에서 벗어나는 최상의 방법은 천당에 가는 것이 아닙니 다. 천당에서 일시적인 복락은 누릴 수 있을지 몰라도, 복락이 다하면 다시 인간세상이나 지옥으로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결국 고통에서 벗어나는 최상의 방법은 다시 태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고통을 감내하면서 중생들의 복락을 위하여 기꺼이 다시 몸 받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바로 보살님(부처님과 중생의 교량역할을 하는 이)이십니다. 예컨대 지장 보살은 얼마든지 성불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신 분입니다. 하지만 중생을 가엾이 여겨 지옥에 있는 중생들을 남김 없이 구제하기 위해서 성불을 유보하고 보살로 머물러 계시면서 지옥이 완전히 비워지기까지 성불하지 않으리라 결심하시고는 서원을 세우셨습니다. 이처럼 자기 혼자서 얼마든지 다시 태어나지 않을 수 있는 무심의 경지에 이르렀지만, 일부러 마음을 일으켜 중생들을 위하여 이 사바세계에 머무르며 헌신하는 분들이 바로 보살입니다.

죽음은 삶을 비춰주는 불빛과도 같은 것입니다. 죽음이 삶을 비춰주어야 우리는 우리의 삶을 바로 볼 수 있게 됩니다. 죽음이 없는 삶은 빛이 없는 삶이며, 지금 내가 여기에서 이렇게 희망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야 할 이유가 없는 삶입니다. 죽음은 삶의 친구이며 삶을 지탱해주는 에너지입니다. 죽을 만큼 열심히 희망을 가슴에 품고 사십시오. 그리고 이 세상과 이별하는 날, 그 죽음 앞에서 떳떳할 수 있는 그런 삶을 계획해보시기 바랍니다.

월호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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