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사회 큰어른' 민병수 변호사 타계
06/12/23  

▲ 고 민병수 변호사. 사진=연합뉴스

 

'캘리포니아 한인사회의 큰어른' 민병수(미국명 윌리엄 민) 변호사가 폐렴 악화로 지난 1일 오전 별세했다. 향년 90세. 유족 측은 “고인의 평소 뜻에 따라 연명치료를 하지 않고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영면했다.”고 밝혔다

고 민 변호사는 한국의 초대 교통부장관(1948년 8월~1948년 10월), 초대 LA총영사(1948년 10월~1960년 8월)를 역임했던 민희식(1895~1980) 선생의 3남 2녀 중 차남으로 1933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선친이 초대 LA총영사로 부임함에 따라 중학교 3학년에 재학하고 있던 1948년 15세의 나이로 미국으로 건너왔다. 이후 라번대학을 졸업하고 한 초등학교에 근무하던 중 1970년, 캐롤 민 씨를 만나 가정을 꾸린다. 오레곤주 동부 에코 출신인 캐롤은 캘폴리 포모나 진학을 위해 캘리포니아로 왔으며, 두 사람은 LA YMCA에서 열린 댄스 믹서(모르는 사람들과 친분을 쌓기 위한 간단한 연회)에서 처음 만났다. 1968년 8월이었다. 캐롤 민 씨는 민 변호사의 첫 인상에 대해 “친구 따라갔다가 윌리엄을 처음 만났다. 정장에 하얀 양말을 신고 있었는데 그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고 첫인상을 회고하기도 했다.

민 변호사는 교사로 일하면서 노스웨스턴 로스쿨과 글렌데일 로스쿨에서 공부했다. 1975년 캘리포니아주에서 한인으로는 세 번째로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고 이후 48년 동안 형사법 전문 변호사로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특히 그는 1983년 남가주한인변호사협회(KABA)를 설립해 남가주 한인사회를 위한 봉사에 앞장섰으며, 현 한인타운청소년회관(KYCC)의 전신인 한인청소년센터(KYC) 이사(1975년~1983년)로 재임하면서 이 단체 성장의 기틀을 마련했다.
카터 대통령(1977년~1981년)이 미국의 39대 대통령으로 재임하던 시절에는 민주당 대통령 자문위원으로 일하면서 한인 커뮤니티의 각종 현안들을 백악관에 직접 건의하는 등 한인 사회 권익 증진을 위해 힘을 기울였다.
1983년~1987년에는 LA카운티 산하 법률위원회 첫 한인 커미셔너로 봉사했다.
1992년 4월 LA폭동으로 한인 커뮤니티가 많은 피해를 입자 KABA 산하 한인법률권익재단을 통해 피해를 입은 업주들을 대리해 시 정부에 집단 소송을 제기해 피해 업주들을 위한 피해 보상과 그들의 제기를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2년 만에 마무리된 이 소송을 통해 민 변호사는 LA시가 피해 업소당 2만 달러의 손해배상 비용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이끌어내며 소송에 끝까지 남아 있던 한인 업주 10명이 배상금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왔다.
민 변호사는 2008년 2월~2022년 7월, 아리랑아파트 보드맴버로 활동하며 무료로 법률적인 자문을 제공했다. 혹시라도 법률 문제로 비화할 수 있는 케이스는 이 아파트 보드의 고문변호사인 스티브 김 변호사에게 추가 무료법률자문을 구해서 만일에 법률적 문제가 발생지 모르는 사안에 대해서는 이중으로 보호해주기도 했다.

민 변호사는 2003년 LA시와 카운티, 캘리포니아주와 연방 정부가 1월 13일을 ‘미주 한인의 날’로 제정하고 선포하는 데에도 앞장섰다. 이후 그가 손수 작성한 ‘미주 한인의 날 결의안’은 매년 1월 13일이면 매년 캘리포니아 주의회와 LA시, LA카운티 의회에서 낭독되고 있다.

남가주에 한인의 이름을 딴 공립학교가 3곳이나 탄생하는 데에도 민 변호사의 역할이 매우 컸다. 민 변호사는 2006년 당시 LA통합교육구(LAUSD)가 옥스퍼드 애비뉴와 2가 교차 지점에 신축한 초등학교에 ‘찰스 H. 김 초등학교(Charles H. Kim Elementary School)’로 이름 붙이는 프로젝트를 주도해 미국 공립학교에 한인의 이름이 붙은 학교가 처음으로 탄생하도록 진력했다. 이어, 2009년에는 윌셔 블러바드와 샤토가가 만나는 곳에 세워진 중학교 이름을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 전쟁에서 영웅적 활약을 펼친 한인 김영옥 대령의 이름을 붙인 ‘김영옥 중학교(Young Oak Kim Academy)’로 명명하는 데 앞장섰다. 또 2013년에는 버몬트 애비뉴와 버질 애비뉴 교차 지점에 건립된 메그닛 초등학교의 이름이 1948년 런던 올림픽과 1952년 헬싱키 올림픽 하이 다이빙에서 금메달을 따며 올림픽 다이빙에서 미국 처음으로 2연패 기록을 세운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의사인 새미 리 박사의 이름을 붙여 ‘닥터 새미리 매디컬 앤드 헬스 사이언스 메그닛 초등학교(Dr. Sammy Lee Medical and Health Science Magnet Elementary School)’로 붙여지도록 한인들과 함께 힘을 모아 이루어 냈다. 민 변호사는 미국 공립학교에 한인의 이름이 붙여질 수 있도록 힘을 기울인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겼다고 한다.

2011년, 민 변호사는 안구 암으로 한쪽 눈을 적출했지만 다른 부위에서도 암이 발견돼 수차례에 걸쳐 수술을 받고 방사선 치료를 하는 등, 사선을 넘나든 시간에도 한인 커뮤니티를 위한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암과 사투를 벌이던 2012년, 그는 LA시 공청회에 참가해 당시 4개 선거구로 쪼개졌던 LA한인타운의 선거구를 단일화하도록 강력히 요구하기도 했다. 민 변호사를 비롯한 한인사회의 단합된 힘은 결국 2021년 12월, LA 한인타운 선거구 단일화라는 결실을 맺게 했다.

민 변호사는 생전 대한민국 대통령 표창(2001년), 재미동포 첫 대한민국 법률대상(2009년), 세계한인검사협회 주최 평생공로상(2018년), 남가주한인변호사협회 주최 개척자상(2018년) 등을 수상했다.

고 민병수 변호사의 장례식은 지난 10일(토) 오전 10시 남가주새누리교회(964 S. Berendo St., LA, CA 90006)에서 진행됐다. 시신은 고인의 뜻에 따라 화장됐다.

유족으로는 부인 캐롤 민 씨와 장남 크리스 민, 차남 티모시 민 씨가 있다.

▶연락: (213) 447-5475(캐롤라인 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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